지난 9월 28일, 아마존(Amazon)에서 가정용 로봇을 발표했다. 이름은 아스트로(Astro). 오리처럼 생긴 몸에 바퀴가 3개 달려있고, 안에는 잠망경 같은 카메라를 내장했다. 얼굴 대신 달린 태블릿은 제법 귀엽다. 필요하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한다.
귀여움의 가치
확실히 귀엽긴 하다. 그런데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다. 아마존은 방범 기능 등을 내세웠지만, 이런 로봇이 없어서 그동안 도둑이 들었던 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가 끝나자마자 ‘999달러 내고 베타 테스터를 하라는 거냐’는 사람들의 독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단 로봇 자체는 꽤 놀랍다. 우선 가격. 이 가격에 이렇게 재빠르게 동작하는 AI 로봇을 구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아마존이 쌓아 올린 기술력도 다 들어갔다. 물류 로봇 키바와 인공지능 아마존 알렉사, 보안 카메라 링, 파이어 태블릿을 다 합치면 딱 아스트로가 나온다.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존이 가진 하드웨어 제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쓸모와는 별개로 어쨌든 귀여우니까 무조건 사겠다는 사람은 있다. 이해한다. 갤럭시 Z 플립3는 접으니까 ‘예뻐서’ 많이 팔렸다. 일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명대사처럼, ‘귀여운 건 최강’이니까.
농담이 아니라, 귀여운 건 정말 중요하다. 그동안 레노버 젠보를 비롯해 지보(Jibo), 안키(ANKI), 쿠리(Kuri) 등 가정용 로봇이 우후죽순 쏟아졌던 시기도 있었다. 이들은 각자 멋진 기능을 가졌다며 노래를 불렀지만, 결과는 모두 망했다. 가장 유명한 일본 소프트뱅크 페퍼도 결국은 팔리지 않아서 임대 사업을 했다가 다수가 재계약을 포기했다.
‘집사’가 아닌 ‘펫’
그러다 찾은 가능성 중 하나는 귀여운 로봇이었다. 강아지 흉내 내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는 로봇 강아지, 소니 아이보(AIBO)가 이게 먹힌다는 걸 증명했다. 이후 등장한 가정용 로봇은 기능을 다소 줄이고, 대신 귀여움을 강조하는 그런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21세기 가정용 로봇은 집사가 아니라 펫이다.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그저 사람과 놀 뿐이다. 일하는 로봇은 이미 로봇 청소기나 세척, 세탁 로봇처럼 아예 전문화된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21세기 가정용 로봇은 집사가 아니라 펫이다.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그저 사람과 놀 뿐이다.
이와 비슷한 컨셉으로 나온 ‘파이보’, ‘리쿠’ 같은 국산 로봇도 있었다. 먼저 가정용 감성 돌봄 AI 로봇 파이보는 40cm 크기의 대화형 로봇이다. 얼굴 인지, 상황 인지, 간단한 자율 보행 기능을 갖췄다. 코딩 교육을 함께할 수 있는 80만 원짜리 DIY 키트도 판매한다. 비슷한 용도로 토룩에서 개발한 리쿠는 가격이 비싸서, 개인용보단 교육용이나 공공기관용으로 쓰인다. 눈으로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비슷한’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온전히 ‘귀여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귀엽다는 이유 하나로 100만 원을 낼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좀 더 다양한 가정용 로봇을 팔고 있다. 유카이 공학에서 만든 보코 에모는 AI 스피커형 로봇이다. 스피커에 감정을 표시할 수 있도록 목이 움직이거나, 머리에 달린 뿔이 흔들린다거나 하는 기능을 집어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겐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 밖에 대화형 로봇인 로미(Romi)나 말 대신 노래로 대답하는 찰리(Yamaha charlie)도 있다. 파나소닉에서 나온 니코보는 털 뭉치를 닮은 로봇으로, 다른 세계에서 온 애완동물처럼 보인다.
여러 로봇이 있지만, 가장 화제가 되는 로봇은 역시 러봇(Lovot)이다. 그루브X에서 만든 이 로봇은 눈을 깜빡거리거나 움직일 수는 있지만, 대화는 할 수 없다. 대신 껴안으면 체온을 느낄 수 있고, 함께 지낼수록 점점 친해진다. 사람을 따라다니거나 안아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다른 러봇과 함께 노는 기능도 있다.
별다른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이 무쓸모 러봇을 위해 수많은 기술이 들어갔다. 사용된 부품은 총 1만 개, 부착 센서는 50개가 넘는다. 물론 (소니 아이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로봇은 그저 꼬리를 살랑거리는 게 전부인 쿠션형 로봇, 쿠보(Qoobo)지만.
아마존 아스트로가 값싸다고 언급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쯤 되면 한 마리(?) 입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도 하나둘 생길 타이밍인데, 사실 고백하자면 가정용 로봇은 아직 굉장히 비싸다. 소니 아이보는 300만 원대, 러봇은 350만 원이 넘는다. 다른 보급형 로봇들도 최소 몇십만 원대다. 서두에서 아마존 아스트로가 값싸다고 언급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쓸모와 가격의 딜레마
현재 기술력에서 아스트로 정도 로봇을 삼성전자에서 판다면 적어도 300만 원은 받을 거다. 애플이라면 400만~500만 원에 팔지도 모른다. 범용 부품도 없고, 플랫폼도 없고, 시장도 작다. 어디에 쓸지도 아직 모른다. 귀여움은 최강이지만, 기껏 귀여움에 몇백만 원을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존 아스트로는 이런 가정용 로봇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까? 농담 아니고 지금 사면 999달러를 내고 베타 테스터가 되는 게 맞다. 물론 지구가 아니라 미국으로만 한정해도 그럴 사람이 널리고 널렸으니, 우리가 굳이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아스트로는 아마존이 축적한 기술로 가격을 낮췄고, 이동 속도나 자율 주행, 상황 인식, 안면 인식 같은 집에서 살기 위한 기본기를 갖췄다. 그리고 그 위에 적당한 귀여움을 얹었다.
대신 아스트로는 아마존이 축적한 기술로 가격을 낮췄고,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을 따라갈 정도의) 이동 속도나 자율 주행, 상황 인식, 안면 인식 같은 집에서 살기 위한 기본기를 갖췄다. 그리고 그 위에 적당한 귀여움을 얹었다. 귀여움만으로 999달러를 내긴 아깝지만, 다양한 최첨단 기능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귀엽다는 핑계를 대며 999달러를 내기엔 충분하다.
여전히 쓸모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