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행사의 달 5월이다. 어린 시절엔 이달이 그렇게 기다려졌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매주 있는 결혼식 날짜 체크하며 현금 두둑이 담긴 봉투까지 챙기랴 정신이 없다. 게다가 말끔하게 차려입는 꾸밈 노동도 감수해야한다. 불편한 양복 안에 몸을 욱여넣으며 내 몸에 꼭 맞는 슈트 한 벌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맞춤 정장 팁 1’에 이어 이번엔 재단과 봉제 파트다. 사실 이 과정은 테일러와 재단사의 합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당신이 개입할 여지가 크게 없지만, 소소한 정보와 읽어보면 꽤 흥미로울 내용을 담았으니 지나치지 말자.
재단
몸 치수를 재는 체촌이 끝나면 재단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잠깐, 재단의 정의를 잠깐 짚어보자. 슈트 재단은 원하는 디자인을 정확하게 종이에 스케치하고 그 본을 다시 원단 위에 그린 후 가위로 잘라내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 작업을 행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주문한 디자인과 모든 디테일을 테일러가 재단사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때 건네는 것이 작업 지시서인데 신체 사이즈, 원단, 단추 스타일, 소매 기장 등 디테일한 정보가 이곳에 기재된다.
가장 이상적인 길이는 셔츠 소매가 재킷 밖으로 1~2cm 보이도록 입는 것이다.
혹시 적당한 소매 기장을 궁금해하는 당신이라면 주목하자. 가장 이상적인 길이는 셔츠 소매가 재킷 밖으로 1~2cm 보이도록 입는 것이다. 또한 재킷 전체 기장은 엉덩이를 다 덮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래야 그리 길지 않은 다리 길이를 들키지 않을 수 있고,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쳐지기만 하는 엉덩이를 감출 수 있을 테니까.
다음은 바지 기장이다. 물론 입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구두를 신고 섰을 때 앞 주름이 일자로 펴진 상태가 가장 적당하다. 이 기장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바로 직업군에 따라서 선호하는 길이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점. 정치인이나, 변호사, 교수처럼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반 회사원들보다 조금 더 길게 입는다. 당신도 바지 품이 여유롭고 긴 영국 스타일과 길이가 짧고 슬림한 이탈리안 스타일 중 원하는 무드가 있다면 테일러에게 명확하게 취향을 어필하자.
아울러 수년간 보아온 내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자신의 신체 특징들을 테일러에게 미리 설명하자. 예를 들어 등이 굽었거나, 처진 어깨, 새가슴, 배 둘레가 가슴둘레 더 클 때, 다른 양쪽 팔다리 길이 등을 테일러에게 일러주면 재단사에게 이런 점을 강조할 것이다. 한두 푼 하는 것 아니니 이왕 만들 때 당신의 몸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슈트를 탄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능력이 뛰어난 테일러는 직접 재단까지 맡아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테일러와 재단사의 일은 분리되어 있다. 지금부터는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재단 과정을 말해주겠다. 앞서 언급했던 재단 작업 중 원단 위에 그림을 그리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뜨거운 프레스에 원단을 굽는 일이다.
맥반석 오징어도 아니고 원단을 굽는다니 생소한 이야기일 거다. 이 과정이 필수인 이유는 원단 자체에 스며있는 수분을 모조리 증발시켜 더 이상 수축이 되지 않는 상태로 만들기 위함이다. 280~300도 정도의 롤링 프레스기에 원단을 넣고 짧은 시간 동안 열을 가한다. 물론 열에 약한 원단은 이 작업을 건너뛴다.
구워진 원단을 재단 판 위에 올려놓으면 이제 본격적인 재단에 들어간다. 재단사들은 늘 긴장된 상태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슈트는 정확한 수치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든 원단은 각자의 특성이 있어 예민하게 다뤄줘야 한다. 탄성이 있는 원단은 변형 가능성이 있고, 성글게 짜인 소재는 올이 풀려 시접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니까. 재단사들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런 점들을 재단 시 미리 계산해 놓는다.
물론 오랜 경력의 재단사들 손에 맡겨졌다면 그럴 리 없겠지만 체크 패턴이나 줄무늬 슈트의 경우 옆 솔기에서 양쪽 문양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옷들은 대칭을 맞출 수 없어 패턴이 어긋나있기 마련이다. 그 부분에서 퀄리티 차이가 나는 것이니 꼭 꼼꼼히 체크해 보자.
체크 패턴이나 줄무늬 슈트의 경우 옆 솔기에서 양쪽 문양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여담이지만 재단이 워낙 까다로운 작업인지라 이 일을 막 시작한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수습 과정을 거쳐야만 가위를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이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수습생들이 태반이다. 덧붙이자면 재킷과 바지 재단사가 각각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실루엣만 봐도 알 수 있듯 재킷 제작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란다. 바지 6개를 만드는 시간과 재킷 1개를 만드는 시간이 같다고 하니 수긍이 된다.
봉제
흔히 우리가 말하는 슈트 장인은 바로 재킷 봉제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봉제팀은 상의, 하의 그리고 마도매 이렇게 3팀으로 나뉜다. 재미있는 점은 상의와 하의 봉제사들은 거의 남자로 구성되어 있고 마무리 작업인 손바느질 파트는 전부 여자들이 맡는다. 그 이유를 가끔 생각해 보곤 했는데, 꼼꼼함과 실력을 떠나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온종일 다리, 허리, 손목 등 혹사를 당하지 않는 부위를 찾기 힘들 정도니까 말이다.
함께 일하는 봉제사는 50년 동안 슈트를 만들고 있지만, 여전히 어떤 분은 소매 달기가, 어떤 분은 카라 봉제가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작은 실수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 슈트,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