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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서도 세팅할 수 있는 홈메이드 4D 영화 5선
2023-02-22T19:19:06+09:00

커플에게 양보하지 마세요. 솔로만 클릭하세요.

봄은 지각을 모른다. 내가 꼭 솔로일 때만. 올해도 성실히 꽃은 피었고, 내 입은 밥 먹는 데만 쓴다. 이러다 감각 기관들 다 퇴화하겠다. 커플 지옥 사이에서 뻘쭘히 허공 응시하지 말고, 언제나처럼 당신의 등을 백허그하는 장판 위에서 이런 영화 어떤가. 영화를 보며 그 속에 등장하는 아이템까지 곁들이면 이곳이 진정한 4D 영화관. 당신의 공허한 마음과 눈, 코, 입은 임볼든이 책임진다. 이 패키지와 함께라면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2005)  

‘은하계 초공간 개발위원회’는 은하 사이 고속도로를 내기 위해 걸리적거리는 지구 하나쯤은 아무 고민 없이 날려 버린다. 점심 메뉴 선택이 일생의 가장 큰 숙제인 우리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가 살해되는 순간 인간 혹은 지구인 주인공 아서 덴트(마틴 프리만)는 현생에 쌓은 덕이 있어 가까스로 지구에서 탈출한다. 포드 프리펙트(모스 데프)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인데, 그는 ‘은하수 가이드’ 집필자다. 이 영화의 정수는 우리의 주의를 이 좁은 땅덩이가 아닌 저 먼 은하계로 환기했다는 점이다. 지구 밖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우린 우주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등바등 살지 말자. 우린 모두 이 행성에 잠시 무임승차한 히치하이커일 뿐이니. 범 우주적 관점에서 집필된 안내 책자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할 수 있으면 피해라.’ 그깟 사랑. 물론 이 영화의 마지막엔 지구가 재건되고 사랑이 남겨졌지만, 우리는 지금 연애 말고도 할 일이 많다. 영화에서처럼 종말을 예견한 돌고래가 지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는지, 멸종된 동물들도 자기 살길 찾아 다른 은하로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닌지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쫓아가 봐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준비물: 수건, 토스트

주인공들의 애착인형처럼 따라다니는 아이템이 바로 수건이다. 그들 목숨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물건 중 하나. 이 영화에서는 그 쓰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원작인 책에서는 한 페이지 분량으로 수건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열하듯 서술된다. 일단 우리도 목에 걸자. 외풍이 있는 집이라면 목덜미에 온기가 스밀 것이다. 영화를 보다 졸리면 단정하게 개어 베개로 사용하고, 자체 인터미션 시 식물에 새로운 방식으로 물을 주고 싶다면 수건에 물을 흠뻑 적셔 화분 위에 쭉 짜보자.

또한 우주 아이템 중 가장 탐나는 물건이 식빵을 자르는 칼이다. 마치 광선검 축소판처럼 생겼는데 자르면 자동으로 빵이 구워지는 신박한 물건이다. 바삭바삭 토스트에 버터만 발라 한 입 베어 먹으면 그 고소한 풍미가 영화를 더욱 맛깔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낮술 (2008)

최근 여자친구와 헤어져 서러운 솔로 혁진. 그를 위로하기 위해 진탕 술을 먹던 친구들은 갑자기 강원도로 떠나자며 급 여행을 추진한다. 하지만 다음날 약속을 지키고자 정선 터미널에 도착한 이는 정작 친구들의 부추김에 마지못해 출발한 혁진 혼자뿐. 연고도, 애인도, 친구도 없는 낯선 공간 강원도에서 혁진은 홀로 낮술을 마셔가며 외로움을 달랜다. 후회감이 밀려오던 찰나, 낯선 여자가 술에 취해 말을 걸어온다. 이렇게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걸까?

남들 다 쌍쌍으로 꽃 보러 돌아다니는 요즘, ‘방구석에서 혼자 영화나 보라면서 왜 이런 영화를 추천했나’ 싶을 거다. 하지만 시놉시스만 보고 판단하지 말길. 노영석 감독의 낮술은 헛된 로맨스를 꿈꾸는 이들의 망상을 단박에 깨부수는 로드무비다. 특히 고구마를 한 10개는 통으로 갈아 마신 듯한 혁진의 행동은 보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고혈압 환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 찌질함이 이 글을 보는 그 누구에게도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 차라리 이럴 때는 ‘이불 밖은 위험해’라며 스스로를 세뇌시킨 후 재미있게 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준비물: 컵라면, 소주

제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소재는 바로 술이다. 그것도 낮술. 여행지에서 낯선 여자가 말을 걸어올 때의 설렘이 더욱 강렬하게 증폭되는 이유도 바로 술이라는 매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렇게 먹다가는 분명 술병이 날 것 같은데도, 시종일관 술잔을 기울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한잔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그중에서도 다른 거 말고, 컵라면과 소주가 제격이다. 왜 그런지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

주인공이 십 대라서 사춘기의 성장통 영화로 비춰지기 싶지만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가 되어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인생의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찰리는 완전한 아웃사이더. 사랑, 친구, 우정, 미래 등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그러다가 샘과 패트릭을 만나 그의 세계에도 우정이란 단어와 감정이 등장한다. 그에게 우정은 전부가 된다.

어릴 적 트라우마를 안고 의기소침하게 살아가던 찰리에게 별다른 편견이나 차별 없이 다가와 준 샘과 패트릭. 그들의 관계는 찰리의 한걸음 용기에서 시작된다. 가슴 아릿한 상처와 아픔, 콤플렉스를 가진 그이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다. 서툴어서 서로 상처를 입히고 외면하고 외면당하고. 결국엔 그 소용돌이를 돌아 다시 만나고 더 단단해진 유대 속에 자유를 찾는다.

준비물: 바닐라 아이스크림, 우유

찰리의 첫 파티에서 샘은 찰리에게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준다. 짝사랑하고 있던 샘이 만들어줘서 더 달콤한 밀크셰이크. 우유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란 단순한 재료에 초콜릿 칩, 과일 등 선호하는 플레이버를 넣으면 나만의 밀크셰이크가 완성된다. 단순한 재료지만 시원하고 부드러운 그만의 감성과 맛이 느껴지는 이색 디저트, 밀크셰이크를 쪽쪽 빨면서 세포 어딘가에 잠들어있던 사춘기의 흔적을 깨워보는 건 어떨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Howl’s Moving Castle, 2004)

꽃미남 마법사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러브스토리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애니메이션. 문제적 천재 마법사 하울과 단 몇분 함께 있는 것을 들킨 덕에 할머니로 변하는 저주에 걸리게 된 소피는 하울의 성에서 청소부로 일하게 된다.

하울의 마법이 덧입혀진 하울의 성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세계를 떠돌고, 하울의 성엔 수많은 문이 있는데 그 문은 각각 다른 나라로 통하는 출입구가 된다. 마치 앞문으로 나가니 미국이고, 뒷문으로 나가니 아프리카가 펼쳐지는 그런 상황. 하울이 괴물이어도 상관없고 소피가 할머니어도 상관없는 두 주인공의 순수한 로맨스는 오직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한 감성이다.

준비물: 베이컨, 달걀

할머니가 된 소피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에 삶의 내공까지 급성숙이 진행되며, 청소도 요리도 후다닥 해치우는 만능 살림꾼으로 변한다. 불꽃 악마 캘시퍼를 살살 꼬드겨 달걀과 베이컨을 무쇠팬에 자글자글 굽는데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침을 꼴딱 삼키지 않을수가 없다. 침만 삼키지 말고 주방에 가서 후딱 만들어 먹자. 그러나 대충 구우면 그 비주얼이 안나온다. 베이컨은 너무 안 익거나 너무 바싹 익지 않게 적당하게 익혀주고, 계란후라이도 노른자가 탐스럽게 정성스레 구워보자. 싱크로율 몇 퍼센트인지 인증샷을 남겨 인스타에 올려도 좋을 듯.


용서받지 못한 자 (2005)

‘범죄와의 전쟁,’ ‘군도,’ ‘공작’의 윤종빈 감독의 대학교 졸업작품이다. 군필자라면 익히 알지만 일반 군 영화나 전쟁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적인 부조리와 가혹행위를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다. 국방부에 육군 홍보용 영화를 찍겠다고 가짜 시나리오를 제출해 촬영 허가를 따냈다. 결국 개봉 후 윤 감독은 소송 위협까지 받고 공개 사과문을 써야 했으나, 평론가 반응도 좋았고 심지어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어리바리 고문관 허지훈 이병 역할을 윤종빈 감독이 직접 맡았다.

준비물: 군복, 뽀글이, 건빵, 냉동 음식, 탄산음료

예비군 군복 바지 꺼내입고, 두꺼운 양말에 고무링까지 채우자. 느낌 아니까. 위에는 깔깔이를 대충 걸치고 예비군이니 각은 잡지 말고 한없이 퍼져서 보자. 라면은 봉지에 물 부어 끓여먹는 뽀글이여야 한다. 귀찮다면 육개장 컵라면 정도는 괜찮다. 냉동만두나 냉동 닭강정도 좀 돌리고, 건빵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맛스타는 과일 맛 탄산음료로 대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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