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전문가들 사이에서 피노 누아는 가장 섹시한 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 ‘피노 누아’라는 이름을 직역하면 ‘검은색 소나무(black pine)’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덩굴에 자라는 탱탱하고 짙은 포도의 모습에서 따온 것.
이름의 어원과는 상관없이 피노 누아 와인 자체는 풍부한 맛은 물론 빛이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적보라색을 띠고 있다. 와인 한 모금 한 모금이 베리와 체리로 시작해 속을 꽉 채우는 흙 향과 버섯, 허브, 가죽, 토바코로 이어지고, 숲이 우거진 땅에서 나는 향을 내며 복합적인 풍미를 선사한다.
피노 누아를 마시는 것은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 것과 같다. 처음은 달콤해서 시작부터 마냥 즐겁지만 계속해서 마시다 보면 더욱 깊은 내면까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도 피노 누아가 섹시한 와인이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가끔은 일탈도 필요한 법.
가메(Gamay)
피노 누아는 프랑스의 버건디 지방과 주로 깊은 관련이 있다. 조금만 더 멀리 가면 위치한 보졸레 지방에는 ‘가메’라고 하는 가벼운 바디의 레드와인이 있다. 가메는 피노 누아보다 플로럴향이 강하지만 비슷한 흙 향을 갖고 있고 산도가 높아서 식사와 페어링 하기에도 좋다.
피노 누아보다는 살짝 맛이 가볍지만, 그렇다고 그 특유의 색채가 없어지는 라이트함과는 전혀 다르다. 역시 수백 년을 걸쳐 내려온 이 품종이 긴 역사를 가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시기 편해 와인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을 뿐만 아니라 숙련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와인이기 때문이다.
잼 같은 과일에 로즈와 스파이스가 살짝 들어간 아름다운 와인이다.
좀 더 어둡고 신비한 느낌의 이 와인은 적당한 산도와 바이올렛 색이 변함없이 생기 넘치는 매력을 보여준다.
바르베라(Barbera)
이탈리아에는 다양한 와인이 많다. 말린 포도로 만든 와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즙이 많고 웅장한 레드와인, 돼지고기 요리를 먹을 때 한 병 따면 바로 파티 장소로 둔갑시키는 화이트와인까지. 그리고 사랑스러운 이 바르베라 와인도 있다. 바르베라는 주로 이탈리아의 북서쪽에 있는 피에몬테 지방에서 찾을 수 있다. 네비올로나 슈퍼투스칸과 같은 명성은 없지만,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닌가.
바르베라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숙성할 필요가 없고 가격도 저렴한데 맛까지 좋기 때문이다. 피노 누아와 비교해서 바르베라 품종이 더 농도가 짙어 바이올렛과 라벤더와 같은 플로럴향이 더 강하다. 거기에 바닐라와 스파이스가 말린 잎과 허브향에 살짝 가려져 있다. 바르베라는 다재다능한 와인이다. 그래서 피크닉이나 디너파티와 같이 다양한 자리에서 쉽게 마실 수 있는데, 오리 파스타나 트러플이 많이 들어간 리조또와는 특히 더 궁합이 좋다.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이 가격의 바르베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고 균형 잡힌 맛이다. 꼭 여러 병 사두자.
처음에는 깍듯이 매너를 지키다가 주인이 슬쩍 자리 깔아주면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추는 저녁식사 손님을 연상시키는 쥬세페 바이라의 바르베라. 과일향이 강하고 오렌지필과 화이트 페퍼 풍미를 가진 와인이다.
멘시아(Mencia)
아마 멘시아라는 와인을 마셔보기는 커녕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스페인 포도인 멘시아는 스페인 북서부 지역의 갈리치아 지방에 있지만, 미국 여행 시 스페인 레스토랑이나 전문점에서도 구매할 수도 있다.
보라빛깔의 레드 와인이 잔에 담기는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도 멈춰서 경탄을 보낼 정도로 그 색이 아름답다. 처음에는 딸기, 라즈베리와 체리가 피노 누아를 연상시키지만 석류의 신맛과 미네랄, 약간의 후추 풍미도 느낄 수 있다. 비록 멘시아가 버건디 지방의 피노 누아만큼의 흙향은 별로 없다 해도 맛과 매력이라는 중요한 화두도 잃지 않는 다 가진 와인이다.
멘시아가 숙성이 덜 되었을 때는 맛이 살짝 강할 수는 있지만 그게 오히려 파에야의 느끼한 맛을 잡아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부드러운 와인의 맛을 즐기고 싶으면 스파이시한 바닐라향이 강한 숙성된 멘시아를 추천한다.
미네랄이 느껴지는 즙이 넘치는 붉은 과일. 야생화의 달콤한 아로마와 살짝 느껴지는 초콜릿, 오크향이 특징이다.
Edited by 정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