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 추억 속에 깊게 새겨진 작은 플라스틱 블록들이 머릿속에서 용수철처럼 퐁퐁 솟이난다. 물론 수염 난 어른이 된 후에도 이 레고에 대한 집착, 버리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애와 어른 할 것 없이 신제품 출시일 목 빼고 기다리게 하는 이 마성의 조각들은 당신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매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거실 한 편에 정신없이 어질러진 블록들은 말해주지 않는 브랜드 뒷이야기가 여기 있다.
목수가 빚어낸 장난감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1932년 덴마크 빌룬드의 목수 올레 커크 크리스천슨이 목공소를 세우면서부터다. 그는 12살짜리 아들 고트프레드와 함께 마치 맥가이버처럼 스툴, 마리미판, 사다리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업의 재정 문제는 계속됐고, 크리스천슨은 자연스레 새로운 일거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손이 더 많이 갈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1932년 덴마크 빌룬드의 목수 올레 커크 크리스천슨이 목공소를 세우면서부터다.
생각의 종착역은 나무로 된 장난감이었다. 이 장난감들이 더욱 인기를 끌면서 크리스천슨은 그것들을 레고(LEGO)라 이름 붙였다. 덴마크어로는 ‘잘 놀다’라는 뜻으로 “Leg Godt”의 합성어다. 라틴어로 ‘나는 합친다’를 뜻하기도. 그 당시 크리스천슨은 소수의 직원들과 이 사업을 꾸려나갔다.
‘최고 만이 최선이다’라는 회사 모토를 원동력으로 삼아 1935년, 크리스천슨의 회사는 그 첫 번째 조립 장난감인 ‘Kirk’s Sand Game’를 내놓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바퀴달린 레고 오리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1937년 고트프레드는 17살의 나이에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 때문에 학업을 위해 독일로 떠나는 대신 덴마크에 남아있기로 한다. 1939년 말에는 규모가 커져 10명의 직원이 레고에서 일하게 됐고,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다.
화재는 과속방지턱이었을 뿐
하지만 모든 스토리에는 명이 있고, 분명 암도 존재하는 법. 1942년 레고 공장이 불에 타는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생산은 계속되었고, 1943년에 이르러 레고는 무려 40여 명과 함께 달려 나갔다. 화재는 잠깐 덜컹하고 만 과속방지턱일 뿐이었다. 이후 1947년 레고는 장난감 역사에 회자될 일을 벌인다. 제품 대량생산을 위해 플라스틱 사출 성형 장치를 들여온 것. 그게 뭐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는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그 기계를 산 사례다.
목공 회사에서 업계를 바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49년에 이르러 레고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선원에서부터 물고기에 이르는 약 200여 가지의 독특한 장난감들을 생산해냈다. 또한 여기에는 자동 바인딩 브릭(Automatic Binding Bricks)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블록 모양 레고의 시작이다.
개명의 힘
이제 전 세계를 휩쓸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쯤 1955년 레고는 수출을 시작했다. 스웨덴에서 공식적인 첫 판매를 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고트프레드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장난감을 시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뜨뜨 미지근한 반응뿐이었다.
당시 블록은 그저 그런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했다. 독특한 장난감들로 레고가 사랑을 받긴 했어도, 블록은 다른 제품들만큼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초반 10년 동안의 판매 실적은 상당히 부진했다.
자동 바인딩 브릭은 1953년 레고 블록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7년에는 블록들을 서로 맞물려 고정되는 조각들로 설계를 달리했고, 1958년에는 더 안정적인 단추형 결합 디자인으로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올레 커크 크리스천슨이 사망하며 고트프레드가 회사의 소유권을 인수했다.
인간이란 무릇 단품보다는 세트에 끌리는 법
1963년 고트프레드는 레고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10가지 핵심 사항들을 만들었다. 무한한 놀이 가능성, 모든 연령대 아이들에게 적합하고, 남녀 아이들 모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등이었다.
새로운 디자인은 아주 튼튼하고, 맞추기 더욱더 쉽게 제작됐다. 이 블록들은 창의력을 자극했고 1964년 놀이 세트를 만들었다. 모델을 완성하기 위한 설명서와 해당 부품들이 모두 들어있었던 이 세트는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심어주기 최적의 구성이었다.
세트는 완전히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이들 중에 먼저 인기를 얻었던 것은 1969년의 듀플로(DUPLO)다. 커진 블록 사이즈로 손이 작은 어린아이들이 쉽고 안전하게 잡을 수 있었고, 삼킬 위험도 없었다. 앞선 조항들을 기반으로 부모들이 믿을 수 있을 만큼 안전하고 유용한 장난감을 만들고,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굳건한 브랜드 가치가 빛을 보았다.
레고와 놀이공원이 만나면
레고는 명실상부 성공한 브랜드가 되었고, 여기서 멈추지 말고 유쾌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바로 레고랜드 빌룬 리조트(Legoland Billund Resort)를 만들 것. 1968년에 개장한 레고 놀이공원으로 가족 친화적인 공간으로 꾸며졌다. 급경사가 펼쳐진 롤러코스터만 즐비한 놀이공원이 아닌 모든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 시설로 명성을 얻었다.
폴라랜드, 어드벤처랜드부터 나이트킹덤, 이메지네이션존에 이르는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개장일에는 약 3천 명이 방문했고, 초창기 손님을 헤아려보면 최소 62만 5천 명이라는 수치가 집계됐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매년 160만 명의 사람들이 오가며, 덴마크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레고의 두 번째 놀이공원인 영국 버크셔 윈저 소재의 레고랜드 윈저 리조트(Legoland Windsor Resort)는 1996년이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뒤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독일, 말레이시아, 일본에도 생겨났다.
어른이들의 마음까지 훔치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역사 속 다른 브랜드처럼, 레고는 희소성을 지녔다. 실제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 수천 달러에 달하는 돈을 낼 준비가 돼 있는 마니아들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 2000년대 초, 레고가 높은 연령대의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나서는 자연스레 복잡한 설계의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가장 인기가 높은 세트는 스타워즈와 해리포터 시리즈다. 또한 클래식 타운 컬렉션에 추가된 공항 셔틀은 배터리로 작동되는 기차와 둥그렇게 이어지는 기찻길로 레고 제품 중 보기 드문 아이템이었다. 브릭 수는 730조각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이러한 레고의 진면모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주는 건축적인 아름다움이다. 타지마할과 에펠탑,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디자인과 극적인 모양새를 뽐낸다. UCS(Ultimate Collector’s Series) 제품인 밀레니엄 팔콘은 매우 비싼 가격대를 자랑하는데, 최근 제품이 재발매 됨에 따라, 남아있던 오리지널 제품을 발견할 가능성은 적어졌다.
레고 시리즈 중에는 전 세계의 마니아들의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오직 덴마크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제품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레고 밀크 트럭은 133조각으로 구성된 장난감, 아니 걸작이다. 사실 이것은 ‘MD Foods’라는 이름의 유제품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89년 밀크 트럭이 출시된 이후 여러 후속 제품들이 뒤따라 나왔지만, 원작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새로움과는 비할 수 없다.
보잘것없는 목공소의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된 레고는 이후 장난감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레고의 기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이들과 열렬한 수집가들, 모두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장난감과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들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보자.
Edited by 정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