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다 상술이야.”라고 말하며 자기 안에 숨겨둔 물욕 리스트 스크롤 내리는 당신. 너만 있으면 되지만, 네가 이것을 들고 있으면 더 반가울 거다. 대한민국 여섯 명의 보통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게 뭔데?
솔로는 심술 잠시 내려놓고 전지적 관음 시점으로 이 리스트를 즐기면 되고, 남자친구에게 줄 아이템을 고민 중인 여자라면 허투루 지나치지 말길. 그리고 마지막, 여친 선물 기다리는 당신은 그냥 잠자코 있자. 이 리스트 은근슬쩍 흘리다가 2월 14일 집에 혼자 있지 말고.
“꼭 그런 아이템이 있다. 내 돈 주고 사는 건 조금 아까운데, 이상하게 선물로 받으면 정말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에게는 향수가 대표적인 예다. 그중에서도 바이레도 집시워터 오드퍼퓸. 이유? 간단하다. 굉장히 유니크한 향이고 정말 궁금하긴 한데, 15만 원의 제품 용량이 50ml더라. 사실 별다른 거창한 사연은 없다. 15만 원짜리 소주 한 잔 사이즈를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질 뿐.”
서현기(34세, 웹디자이너)
“아이패드랑 가격 차이가 얼마 없어서 같은 가격이라면 아이패드를 사는 게 낫다. 그렇다고 자꾸 뇌리를 맴도는 애플워치를 외면하기란 너무도 가혹한 일. 실용성이 약함에도 감성과 간지를 이유로 갖고 싶은 아이템이다. 어쩌면 결혼 12년차 와이프가 왜 100만 원 가까이 주고 전자시계를 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더 간절한가보다. 납득이 안 될지라도, 내 취향이니까 기꺼이 선물 해 준다면 이보다 더 존중받는 기분이 들 수 있을까.”
박성민(40세, 사업가)
“사실 절판된 책을 받고 싶지만, 그 물건을 손에 넣기까지의 고된 여정을 쥐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보리스 비앙이 쓴 ‘세월의 거품’은 폐에 수련이 피는 초현실적 병에 걸린 애인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낭만화된 사랑의 극단처럼 보이는 이 문장들을 감정의 중력이 점점 작아지는 이 시대를 거스르듯, 당신과 읽고 싶다.”
배성현(35, 그래픽디자이너)
“너무 노골적인 선물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단지 초콜릿이 식상했을 뿐이고, 리비도와 테스토스테론을 끌어 올려 주겠다는 그 깊고도 섬세한 마음, 그 마음을 받는 게 중했던 거니까. 잠자던 욕구를 깨워 줄 L-아르기닌, L-시트룰린, 피크노제놀 3종 세트를 건네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도발에 응수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거로.”
박진원(33, 자동차 엔지니어)
“신혼이니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존재만으로 선물인(?) 아내가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준다면 아무래도 연애 때와는 다른 무엇, 우리 둘만 은밀하게 향유할 수 있는 선물이 좋겠다는 생각. 당신이 생각한 그것 말고, 우리만이 알아챌 수 있는 특별한 향이 담긴 향수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널리 알려진 브랜드 말고 인디이든 키치이든 둘만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유니크한 것 말이다.”
한기덕(34, 프리랜서 작가)
“옷이나 물건은 굉장히 까다롭게 선별하는 편이라 받아도 안 쓰거나 방치하는 게 많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은 일단 끊어놓으면 강제적으로 떠나야만 하기 때문에 더 설렌다. 개인적으로 여행 계획을 잡을 때 유독 티켓값을 보고 망설일 때가 많기도 하고. 만약 여자친구와 내가 둘 다 프리랜서라면 티켓 앞에 ‘편도’가 붙으면 좋겠다. 빈지노의 노래 ‘i don’t mind’ 속 ‘비행기 티켓을 one way로 살 거야’ 이 가사처럼 말이다.”
김경호(31세, 비디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