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1997년까지 단 4년간 생산된 993은 포르쉐(Porsche)가 내놓은 마지막 공랭식 911이었다. ‘공랭 엔진’이라는 아날로그적인 테크놀로지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더해지며 993에는 엄청난 의미가 부여됐다. 지금도 열렬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993은 ‘최후의 공랭식 포르쉐 911’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놀라운 수준의 중고 가격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다.
덕분에 잘 관리된 993은 오늘날에도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최근 RM소더비 경매에 올라온 993 매물 한 대가 포르쉐파일들로부터 이목을 끄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 100대만 생산된 1996년식 카레라 RS 클럽스포츠 쿠페인데, 이 차량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차량 이력에 있다. 1996년도에 출고된 이 차량을 거쳐 간 소유주가 단 두 명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심지어 두 번째 차주가 이 차량을 구매한 시기는 1998년으로, 주욱 혼자서 운행을 했다고 한다. 일단 외장은 별다른 리스토어나 교체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고. 오리지널 컬러인 화이트 외장을 최대한 깨끗하게 관리했으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차가 달린 총 주행거리는 고작 62,407km다. 습기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특유의 개구리 헤드라이트, 거대한 리어 윙은 정말 세월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최대한 순정 상태를 유지하며 잘 관리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온갖 튜닝이 이뤄졌다. 카세트 데크, 에어컨, 2열 좌석과 방음재들을 모두 걷어내고, 그 자리에는 각종 레이스용 파츠를 잔뜩 구비했다. 이를테면 Matter 롤케이지를 비롯해 Recaro 레이싱 시트, 930S 스티어링 휠, 이그니션 킬스위치, 3피스 합금 휠 등 무수히 많다. 달리기 좋은 세팅으로 빌스테인 댐퍼를 조정했으며, 조절식 롤바도 갖췄다. 바디 쉘은 유리아 알루미늄을 사용해 강성을 높였다.
그런데 이렇게 트랙 레이스를 위해 온갖 튜닝을 했지만, 정작 이전 차주는 단 한 번도 서킷 경기에 이 차를 들인 적이 없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물론 그래서 이 차량의 가치가 더욱 빛나 보이는 게 아닐까. 엔진은 오리지널 3.8리터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 올라갔으며, 6단 수동변속기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최고출력은 300마력으로, 6,500rpm에서 가장 높은 힘을 뽑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