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9년간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Wladimir Klitschko, 46)가 모국인 우크라이나 예비군에 입대했다. 클리츠코는 지난 2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입장을 밝혔다.
클리츠코는 기자회견에서 “지정학적으로 첨예한 위치에 처해있는 나의 조국을 지켜보며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고 그러길(예비군에 입대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국가와 도시를 지키기 위해 (예비군 입대) 사인을 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나의 딸이 여기서 한 구역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각국 대사들이 그들의 가족을 모국으로 돌려보내며 학교는 현재 휴교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라고 말해 당면한 시국의 위급함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나의 조국에 대한 사랑, 나의 집,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의 딸에 대한 사랑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고 덧붙이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기자회견에 동석했던 그의 형이자 전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 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시장인 비탈리 클리츠코(Vitali Klitschko, 52) 또한 입장을 전했다.
“적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공격의 대가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모든 위협이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만일 불가하다면, 우리는 무기를 손에 들고 조국을 방어하기 위한 태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 국면은 지난해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병력을 증원하며 시작되었다. 두 국가는 약 2천km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쪽 접경 지역에 약 13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며 동·남·북 3면을 포위, 긴장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자국 병력 3천 명을 우크라이나 서쪽 접경국인 동유럽에 추가 배치하였으며,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독일 측에서 이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또 다른 갈등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는 2000년 파에아 볼프그람과의 WBC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승리하며 첫 세계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데릭 제퍼슨을 꺾으며 WBO 타이틀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 코리 샌더스 전에서 패해 타이틀을 상실하고 연패를 거듭하며 부진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중 2006년 크리스 버드와의 IBF 타이틀전 승리를 기점으로 향후 9년간 14차례의 방어전을 치르며 장기 집권에 돌입, WBA IBF, WBO, IBO, 더 링(The Ring) 헤비급 통합 챔피언을 역임했다. 2017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앤서니 조슈아와의 타이틀전 패배를 마지막으로 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의 형 비탈리 클리츠코 또한 레녹스 루이스 등 당대 최고 복서들과 자웅을 겨루며 WBO, WBC 세계 챔피언을 역임했던 전설적 선수이다. 은퇴 후 2014년부터 정치 행보를 시작, 키예프 시장에 연임하며 정치인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반러, 친서방 성향이며,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두 형제는 이처럼 화려한 복싱 경력과 높은 교육 수준 등 엘리트적 면모를 두루 갖춰 타의 귀감이 되어왔다. 이번 행보로 다시 한번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보여준 둘, 이들을 뒤이을 차세대 복싱 스타는 누가 될지 2022년이 기대되는 복싱 기대주 Top10을 통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