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문턱을 낮추고자 미술계가 시도한 노력의 일환에는 건축이 있다. 전시 관람뿐만 아니라 휴식과 소비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장 누벨(Jean Nouvel),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리움미술관은 얼마 전 ‘열린 미술관’이라는 지향점에 따라 공간 리뉴얼을 마치고 재개관 소식을 알린 바 있으며,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디자인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역시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장소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송은문화재단도 그렇다. 작품을 담는 그릇이라고 불리는 미술관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경우다. 

결국 건축 자체도 미술의 영역이므로 미술관은 미술의 총체인 셈이고, 최근 이 둘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다. 그에 주목해 이번 시즌 놓쳐서는 안 될 5선의 전시를 준비했다. 건축과 미술 두 가지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전시로 11월 감성을 흠뻑 적셔보자.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세기의 기증이라 불리는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22년 3월까지 진행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작들을 처음 공개하는 전시로, 한국 근대 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박수근의 ‘유동’,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산울림’, ‘여인과 항아리’, 이중섭 ‘황소’, 유영국의 단색화 작품 등이 전시된다. 12월에는 샤갈, 달리, 피카소, 고갱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이건희컬렉션 2부: 해외거장>을, 내년 3월에는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104점을 선보이는 <이건희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이 개최된다.  

한편 건축가 민현준이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마당’을 앞세운 미술관이다. 담장을 없앤 마당의 개념을 도입해 주변 환경과 호흡하고 건물 내외를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미술관의 문턱을 낮췄다. 감상자가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관람, 휴식, 문화의 다양한 형태를 마주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의 모습을 담았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인간의 몸은 미술계의 주요한 화두다. <인간, 일곱 개의 질문>전은 21세기의 급변하는 환경과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고찰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전시다. 국내외 51명의 작가와 13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론 뮤익의 ‘마스크 Ⅱ’를 비롯해 백남준, 이불,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을 견인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시해 온 인간적 가치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거울보기’, ‘일그러진 몸’, ‘모두의 방’, ‘낯선 공생’ 등 7개 섹션으로 꾸려져 반세기에 걸친 인간에 대한 예술적 성찰을 짚어보면서 문명의 분기점에서 인간이 맞이한 다양한 곤경들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아낸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1월 2일까지 진행된다.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하고자 전시와 공간 리뉴얼을 마치고 지난 10월 8일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은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가 참여한 공간이다. 마리오 보타는 흙과 불을 상징하는 테라코타 벽돌로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해,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예술 작품을 분야별로 전시하고 있는 M1을 설계했고, 한국 근현대 미술과 세계 미술을 아우른 M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세계 최초로 부식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를 사용하여 현대미술의 첨단성을 표현했다.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를 설계한 렘 콜하스 또한 흔치 않은 재료인 블랙 콘크리트를 사용한 블랙박스를 선보이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미래적 건축 공간을 구현해 건축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드러낸다.


메리 코스: 빛을 담은 회화

메리 코스(Mary Corse)는 지난 60년간 ‘빛’을 주제이자 재료로 삼아 온 작가다.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여러 재질과 기법을 실험해 온 그녀의 노력은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만들었으며, 관람자의 인식과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196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작 총 34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는 10m 이상의 압도적 규모의 회화를 비롯한 여러 대형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빛 회화’, ‘흰빛 회화’, ‘색채 회화’, ‘검은빛 회화’, ‘검은 흙’ 등 미술관 여섯 개의 전시실에 작품을 시리즈로 나누어 구성함으로써 작가의 다양한 시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메리 코스: 빛을 담은 회화>는 2월 20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런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작품으로, 달항아리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절제된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드러낸 공간이다. 특히 건물 내 위치한 세 개의 정원 ‘루프 가든’,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마련된 공용공간을 통해 건축가가 강조하던 관계, 교류, 소통을 실현하는 장소로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

스페인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평생 자신을 괴롭힌 불안감과 광기를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묘사한 그는 비이성적인 환각 상태를 객관화하여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그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달리의 전 생애에 걸친 회화 및 삽화, 설치작품, 영상, 상업광고 등의 걸작 총 140여 점을 소개하며 다방면으로 천재적이었던 그의 예술성을 조명한다. 유년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비롯해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 개인적인 순간들을 함께 소개하는 국내 첫 대규모 원화전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는 11월 27일부터 3월 2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다.

DDP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 고(故) 자하 하디드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인물로 높이 평가되고는 한다. 파격적이면서도 부유하는 듯한 건축 스타일을 가진 그가 디자인한 DDP는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동대문의 역동성을 반영한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물이다. 곡선과 곡면, 사선과 사면으로 이루어져 자연물과 인공물이 이음새 없이 이어지는 유기적이고도 독특한 건축 언어로, 공간의 유연성과 변화하는 미래를 상징했다. 뉴욕타임스가 ‘2015년 반드시 가봐야 할 세계적인 명소 52곳’으로 선정한 서울의 랜드마크인 이곳은 자하 하디드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숨 쉬는 벽

8명의 젊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이갤러리의 <숨 쉬는 벽>은 김도영, 김지희, 김태중, 유영진, 이예은, 이현우, 임성준, 정영돈 작가가 한국 전통가옥의 미를 가미한 스위스 대사관 건물을 사유하여 하나의 작품으로서 작업화한 전시다. 밤과 낮의 시점으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완성한 유영준, 대사관에 존재하는 사물들로 공간을 일시적으로 변형시킨 김지희 등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물든 스위스 대사관을 만나볼 수 있으며, 전시는 12월 4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 장소인 주한 스위스 대사관. 로잔 소재 건축사무소 버크하르트 파트너(Burckhardt+Partner)가 설계한 대사관 건물은 거대한 주거 복합단지에 에워싸여 세워졌다.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설계한 스위스 대사관은 사무국과 관저를 아우르는 복합 건물로, 네 개의 날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한국 전통 가옥의 외관 구조를 스위스 장인정신의 손길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과 스위스의 현대적 미학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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