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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생활은 롤렉스를 부정하는 걸로 시작해 인정하는 걸로 끝난다?
2023-07-31T19:07:14+09:00

N년차 시계 에디터가 아직도 롤렉스에 관심 없는 이유.

시계 커뮤니티 내에서는 ‘시계 생활은 롤렉스를 부정하는 걸로 시작해서 롤렉스를 인정하는 걸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틀린 거 하나 없는 말이다. 워치메이킹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롤렉스라는 브랜드의 역사와 마케팅 전략, 그리고 제품의 퀄리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인정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

시계 에디터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시계 애호가로서 적잖은 기간 동안 시계를 접해왔으나 필자는 아직도 롤렉스에 큰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딱히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 기회에 내가 롤렉스에 대해 미지근한 이유를 얘기해 보려 한다. 또한 모두가 롤렉스를 동경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시계인들이 있다면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디자인

그놈이 그놈

디자인은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라고 할지언정 롤렉스만큼이나 호불호 안 갈리는 시계 디자인이 있을까? 훗날 모든 다이버 시계, 그리고 나아가 모든 스포츠 시계의 표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굳이 불호 포인트를 찾는 게 프로 불편러 같아 보일 수는 있겠지만, 내 마음에 안 드는 걸 어떡하나. 대부분의 롤렉스 모델은 매우 획일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서, 그중 하나가 예뻐 보인다면 다른 모델들도 전부 좋아 보이겠지만, 반대로 그 디자인에 시큰둥한 사람이라면 나머지도 다 관심 밖이 될 확률이 높다.

필자는 롤렉스 베젤과 오이스터 케이스, 그리고 일부 인덱스 디자인에 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물론 그런 요소들을 싫다고 표현하는 건 극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 요즘에는 너무나 흔해진 디자인이다. 고로 너무 많이 봤다. 시계 커뮤니티에 발을 들인 이상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아도 매일매일 보게 되는 게 롤렉스니까.

내가 싫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롤렉스의 디자인 요소도 물론 있다. 바로 르호(Rehaut, 다이얼과 만나는 베젤의 안쪽으로 플랜지라고도 한다)에 각인된 레터링이다. 고급 시계의 묘미는 가까이 들여다 보면 더욱 진가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롤렉스의 르호는 마치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는데 갑자기 100데시벨의 고막 테러를 당하는 느낌이랄까. 롤렉스의 르호 각인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가품 방지를 위해 생긴 건데, 이제는 기술의 상향평준화로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그만 좀 고집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꼽자면 바로 케이스백이다. 일단 화려한 디자인 언어를 채택한 이상 끝까지 밀어부쳤으면 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롤렉스는 케이스백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뒤판이야말로 시계의 주인 외에는 절대 볼 일 없는 자기만족의 디테일 아닌가. 그런 것은 무시하고 오로지 남에게 보이는 면만 치장하는 것 같아서 탐탁지가 않다.

개인적으로는 무브먼트가 보이는 디스플레이 케이스백보다는 닫혀 있고 특정 각인이 새겨진 케이스 백을 선호하는 편인데, 너무 요란 떨지 않으면서 브랜드의 전통의 상징을 새겨넣는 것 같아 그렇다. 오메가의 해마, 세이코의 파도, 그랜드 세이코의 사자, 볼워치의 열차 각인 등이 그런 경우다.

물론 때에 따라 무브먼트가 특별한 시계라면 오픈 케이스백도 매우 멋지다. 오픈 케이스백이야말로 고급 기계식 시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저가의 범용 무브먼트를 굳이 보여준다고 하면 넣어두라고 하고 싶지만, 롤렉스의 인하우스 크로노미터 무브먼트 정도면 충분히 자랑할 만한데.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올해 ‘2023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처음으로 오픈 케이스백을 장착한 스포츠 롤렉스가 나오긴 했지만 일부 플래티넘 데이토나에만 적용되는 거라 사실 없는 거나 다름없다. 앞으로는 다른 모델에도 확장하길 기대해 본다.)

가격

중고가 무슨 일

앞서 디자인적인 이유를 대긴 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롤렉스를 싫어할 수 있을 정도의 이유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롤렉스를 싫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딱히 모난 데 없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특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순하던 시계인들도 롤렉스의 중고 시장 얘기가 나오는 순간 각자 쇠스랑 하나씩 집어 들고 금방이라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킬 것처럼 흰자위를 번득이는데 (‘뭐라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정가는 합리적인 편이지만 절대 정가로 살 수 없도록 물량 조절하는 롤렉스의 방침 덕에 롤렉스 인기 모델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라면 중고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 평판이 가장 높은 브랜드 중 하나인 동시에 가품이 가장 많은 브랜드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게 아니라면 연옥 같은 롤렉스 웨이팅 리스트에서 몇 년이고 기약 없이 대기하는 수밖에. 거기서 오는 반발심으로 인해 다들 ‘내 돈 주고 사겠다는데, 시계가 뭐라고 몇 년을 기다려야 하나?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 흔한 롤렉스를!’ 같은 울분을 토하는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건 롤렉스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롤렉스를 가지고 싶은데 못 가져서 싫은 거라고. 그런 사람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0고백 1차임’과 같은 류의 진저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카메라 비유를 들어보자면, 롤렉스와 라이카의 중고 시장은 유사한 것 같다. 나는 시계만큼이나 카메라 덕후라 10년 전에 중고로 산 라이카 필름 카메라를 아직 사용 중인데, 구입 당시에는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그때도 저렴하진 않았지만 평생 가지고 갈 튼튼한 필름 카메라를 장만한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외국 유튜버들 사이에서 필름 카메라 붐이 불었는지 어느새 그 가격이 서너 배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렸다. 라이카 필카에 무슨 엄청난 성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라이카 딱지가 붙은 필름 상자일 뿐인데. 앞으로 이 거품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으면 내가 추가적인 중고 라이카 필카를 기웃거릴 일은 절대 없으며, 구입을 고려하는 지인이 있다면 두 팔 걷고 뜯어말릴 생각이다.

롤렉스 역시 지금의 중고를 신품가의 1.5~2배 주고 사는 건 상식 밖의 행동이고, 하이엔드와 경쟁하는 그 가격대에서는 롤렉스는 정말 별로인 시계가 맞다.

이미지

졸부와 플렉스의 상징

시계 애호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계의 브랜드에 본인을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시계 외에도 자동차, 카메라, 핸드폰 같은 경우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시계만큼 브랜드 선택권이 다양한 분야는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시계 컬렉팅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만큼 제품 그 자체보다도 브랜드의 이미지가 중요한 게 럭셔리 시계인데, 롤렉스만큼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가 공존하는 시계 브랜드는 없다.

시계 애호가들은 롤렉스를 차지만 롤렉스를 찼다고 해서 시계 애호가는 아니다. 아울러 역사와 전통이 중요한 워치메이킹의 계보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선점한 롤렉스지만 한편으로는 전통과 역사와는 거리가 먼 졸부와 ‘플렉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평판이 가장 높은 브랜드 중 하나인 동시에 가품이 가장 많은 브랜드이기도 하지 않던가.

굳이 남들의 인식까지 신경 쓰며 시계를 차고 싶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인식의 과녁 안에 내 발로 들어가기도 싫다. 필자는 차라리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르지만, 소수의 알아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암호로 통하는 그런 시계를 차는 게 훨씬 즐겁다.

결론

그래서 롤렉스 산다 안 산다?

누군가는 파네라이를 싫어할 수 있고, 스와치를 싫어할 수 있고, 심지어 로랑 페리에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롤렉스를 싫어한다고 하면 ‘왜?’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롤렉스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특징이 없다. 롤렉스는 참 나무랄 데 없는, 큰 특징은 없어도 튼튼하고 잘 만든 시계다. 덤으로 대다수 사람이 동경하고, 제값에 구할 수만 있다면 감가상각도 없는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서 롤렉스보다 매력적인 시계는 쌔고 쌨고, 수년을 기다리거나 웃돈을 주고 살 정도로 관심도 없으며, 양날의 검 같은 롤렉스의 이미지는 그저 엮이고 싶지 않은 골칫거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생 롤렉스를 구입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까? 글쎄. 그건 내 시계 생활이 끝났을 때 말해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롤렉스에 관심 없는 나조차도 이런 장황한 생각을 하게 하다니, 롤렉스 참 대단하다.

롤렉스 부럽지 않은 스포츠 시계 추천 4

당신도 만약 롤렉스는 어딘지 심심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롤렉스가 아니어도 괜찮다면 이런 스포츠 시계는 어떤가. 필자가 애정하는 아이템 몇 가지 추천한다.

01

예거 르쿨트르 폴라리스 오토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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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소나 마스터 시리즈 같은 드레스 워치가 주력인 JLC인만큼, 스포츠 라인에서도 비슷한 품격이 느껴진다. 41mm의 블랙 다이얼 다이버 시계지만 서브마리너와는 매우 다른 매력. 아우터 다이버 베젤 대신 양방 회전식 이너 베젤이 있으며, 안 보여줬다면 아쉬웠을 JLC의 무브먼트는 케이스백으로 감상할 수 있다.

02

그랜드 세이코 44GS SBGJ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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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 배트맨 등은 잠시 잊고, 하이엔드 못지않은 그랜드 세이코의 마감에 빠져보자. 다이얼 디테일은 말할 것도 없고, 뛰어난 하이비트 무브먼트가 보이는 케이스백, 그리고 GMT 핸드가 주는 무심한 듯 세련된 포인트까지. 이 가성비에도 이 악물고 롤렉스 살 건가?

03

제니스 크로노마스터 리바이벌 엘 프리메로 A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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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토나가 감히 못 따라오는 크로노그래프 근본, 제니스의 엘 프리메로는 멋진 버전이 많지만 복각 모델의 토노(Tonneau) 케이스만큼 개성 넘치는 것도 드물다. 37mm 사이즈지만 토노 케이스의 특성상 손목에서 훨씬 더 묵직해 보인다. 엘 프리메로 50주년 기념 모델이며 디스플레이 케이스백으로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다.

04

노모스 클럽 스포트 네오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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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스가 익스플로러를 만들었다면 이런 느낌일 거다. 37mm의 직경, 8.4mm의 얇은 두께, 200미터 방수, 거기다 노모스의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보이는 디스플레이 케이스백. 두 색상 모두 눈부셔서 고르기도 힘든데 둘 다 사도 롤렉스 가격에 못 미치니… 선택은 알아서.

#롤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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