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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서 러브호텔, MZ세대의 놀이터가 되기까지.

2022년 10월

모릅니다,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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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었다 갈래?’. 주어와 목적어가 없어도 우리 모두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아는 멘트. 닥터 스트레인지에 빙의해 그녀와의 14,000,605가지 미래를 시뮬레이션해 보고, 오직 하나의 성공적 미래만이 보일지라도 용기 내 던지는 이 말이 이끄는 곳. 모텔. 

그냥 숙소인데, 모텔이라고 하면 뭔가 없어 보인다. 호텔 간다고는 떳떳하게 말해도, 모텔 간다고는 당당히 말하기 어렵다. 원나잇, 불륜같이 부도덕함과 쾌락을 떠올리게 하고, 심지어 성매매, 몰카 등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똑같은 숙박업소로 분류되는 호텔에서도 ‘스폰’이라 불리는 고액의 조건만남 등 ‘부도덕한’ 성적 행위들이 번번이 일어나지만, 음지 같은 이미지는 모텔 혼자만 독박을 쓰는 듯하다.

오늘날의 모텔은 그동안 여관, 여인숙, 00장, 러브호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공간적 외양의 변화만큼 그 기능과 상징성 또한 변천을 거쳤다. 이런 겉모습과 기표의 변화 때문에 각각이 별개의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줄기가 있다. 각각을 하나의 잘 짜인 서사시로 이어주는 하나의 스토리 말이다. 모텔 그 ‘음란한’ 공간 안에서 벌어져 온 은밀하고 므흣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서대문형무소 건너편 옥바라지 여관골목 <출처: TBS>

이게 다 OO 때문
(feat.여관발이의 탄생)

‘이게 다 OO 때문이다’라는 드립을 근거 없이 무지성으로 하면 욕을 먹겠지만, 모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게 다 일본 때문이다. 모텔이 음탕함과 부도덕함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발단이 일본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 모텔의 기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그중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생긴 ‘파크텔’을 모텔의 전신으로 보는 견해가 꽤 많다. 그런데 사실 이 파크텔은 올림픽을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여관을 살짝 개조하고 이름만 바꾼 형태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개불상놈도 양반 행세한다고, 파크텔로 변신한 여관들의 기능이나 투숙객들의 행위도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과거 여관으로부터 이어져 온 타성은 여전히 이어졌다.

그래서 모텔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여관의 궤적부터 쫓아가 봐야 하는데, 이 여관은 훨씬 더 전인 일제강점기 때 최초로 도입되었다. 여관은 주모가 막걸리 따라주는 조선시대 주막이나 객주, 여각과는 다른 근대적 시설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전자는 합숙도 가능했고 가격도 시시각각 주인장 마음대로 책정됐으며, 식사, 병원, 시장, 상거래 등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다. 반면, 여관은 개인화된 숙박이라는 단일한 목적을 가지면서 공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체계화된 가격체계를 가진 시설이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 여관과 달리 ‘있는 분들’만 사용하는 곳이었다 <출처: 인천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문제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 들어왔던 여관이 일본의 성매매 문화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20-30년대 언론들이 이미 연관에서의 성매매를 규탄하는 기사를 냈는데, 남녀칠세부동석이 뿌리 깊게 박힌 유교 국가에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일본에는 에도시대부터 대합(대합차옥)이라는 게 있었는데, 원래 잠시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다가 게이샤들의 성매매 알선 장소로 변질된 곳이다. 그러니까 방도 빌려주고, 요리도 해주고, 회포도 풀어주는 형태의 객실이 대합이었는데, 왜구들이 한국을 침범하면서 여관에 이 기능을 함께 넣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진국의 침략자들은 공창제와 유곽(일제강점기 당시 생긴 성매매 업소)도 대한민국에 들여왔는데, 1948년 공창제가 폐지되면서 갈 길 잃은 포주들과 성매매 여성들이 여관을 찾게 되었다. 유곽이 여관화 되기도 하고, 여관이 유곽화 되기도 한 것이다.

여관에서 비교적 낮은 금액을 지불하고 ‘언니’들을 불러 성매매를 하는 ‘여관발이’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유교남 유교녀가 대세였던 당시 여관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1960년대 말까지도 언론을 통해 여관이 ‘성매매의 온상’, ‘적선지대’, ‘섹스의 무도회장’ 등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모텔은 그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TVING 드라마 <몸값>의 한 장면

‘대실’과 ‘떡텔’의 등장, 대세가 된 모텔

최근 TVING에서 공개된 전종서, 진선규 주연의 드라마 <몸값>(원작은 이충현 감독의 동명 단편 영화)은 도심 외곽의 한 모텔(로 보이는 곳)을 주 무대로 한다. 작품은 조건만남과 인신매매를 사건의 발단으로 제시하는데, 이 픽션이 현실감이 넘치는 것은 모텔의 성적인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텔은 요즘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나름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모텔과는 조금 다르다. 앞서 언급했던 파크텔, 더 엄밀히 말하면 파크텔이 진화한 90년대 모텔, 속칭 ‘러브호텔’에 가깝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은 소돔과 고모라 같던 숙박시설에 문제를 느꼈는지 숙박업소에 대한 법령을 정비하고 숙박시설의 급 나누기를 시작한다. 지금은 모두 같은 숙박업소로 분류되지만, 당시 법은 호텔, 여관, 여인숙으로 숙박시설을 분류하고, 각각을 다시 갑, 을, 병 등의 등급으 나눠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토대 아래에서 모텔이 태어난다. 외국인 응대에는 언제나 진심인 나라여서 88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마자 소위 숙박시설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여관으로 분류된 시설 중에서 일정 수 이상의 객실과 면적, 부대시설 등을 갖춘 ‘갑’ 급의 여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혜택이 증가하고, 이들은 ‘OO장’, ‘파크텔’, ‘모텔’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였다. 지금 시점에서는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당시만 해도 기존 여관이나 여인숙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명칭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요즘도 가끔 보이는 여관 간판의 온천 마크(♨) 도 객실에 목욕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당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도심 외곽에 자리한 한 모텔

아무튼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런 OO장이나 ‘파크텔’들이 점점 더 ‘모텔’이라는 명칭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는데, 기존 여관에서 비롯됐던 성적 이미지와 기능에 당시 사회 분위기가 합쳐지면서 모텔 문화가 새롭게 형성된다. 올림픽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이런 파크텔이나 모텔들은 소위 ‘떡텔’로 불리며 남녀들의 문란한 섹스를 위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름이 바뀌었어도 여관발이 수요는 여전해 대부분은 이들 숙박시설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있었는데,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늘 반복되는 문제이지만, 올림픽 때 외국인과 타지인들을 상대로 재미를 쏠쏠하게 봤던 숙박업소들이 생존전략으로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모텔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

모텔 주차장 가림막은 국룰

대표적으로 ‘대실’ 서비스가 당시부터 생겨난 것인데, 업주들로서는 공실률을 줄이고 회전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좋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수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 민주화 이후 성적으로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젊은 남녀들뿐만 아니라 가정이 있는 남녀까지 열심히 뜨밤을 보내러 모텔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거기다 하룻밤 숙박보다 비교적 낮은 대실 비용과 거사만 치르고 서로 갈 길 가자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겹쳐 대실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부동산과 건축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전 국민의 소득 증가와 승용차 보급률 상승이 맞물려 도심과 가까운 외곽 지역에 모텔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다. 아울러 당시 20대를 보냈던 자칭 잘 나갔던 한 인터뷰이에 따르면 ‘모텔’이라는 이름도 여인숙, 여관, OO장 대신 모텔을 선호했던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퇴실 시에도 프라이버시 지켜주려고,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키 보관함

당시 모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도심 외곽에 ‘마법의 성’(유명한 에로영화 제목이기도 하다)을 떠올리게 하는 촌스럽지만 화려한 키치 양식의 모텔이 많아졌다는 것. 성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남사스러웠는지, 아니면 당시 남녀의 아랫도리를 옥죄고 있던 간통법 때문인지, 90년대 생겨난 많은 모텔이 도심 외곽(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양평)에 지어졌다. ‘모텔’(Motor + Hotel)이라는 이름이 당시부터 많아졌던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모텔 업주들은 주차장 입구에 가림막이나 철문을 설치했고, 번호판 뒤에 가리개를 놓는 등으로 이런 떳떳하지 못한 손님들을 배려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퇴실 시 카운터가 아닌 엘리베이터 안에 키를 놓고 가게 하는 시스템도 이때 생겼다. 또한, 여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깔끔한 방 시설과 TV, 냉장고, VCR, 에어컨 등도 모텔 수요의 급증에 한몫했다.

야릇한 분위기의 모텔 입구.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

범죄의 온상, ‘러브호텔’을 기억하시나요?

이러한 변화가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는데, 일본에서 남녀들이 오로지 섹스만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던 숙박업소인 ‘러브호텔’이라는 이름이 ‘모텔’을 대신해 불리기 시작했다. 원나잇, 불륜과 같이 90년대까지만 해도 세상 무너질 것처럼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던 사건들의 온상이 러브호텔에 ‘몰빵’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마방이나 집장촌과 동일하게 여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또 당시부터 전조를 보였던 러브호텔의 진화 과정을 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실제 일본 러브호텔과 같이 대놓고 떳떳지 못한 섹스를 지켜주기 위해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하트 모양의 야릇한 침대나 자쿠지, 월풀욕조를 구비하고 농염한 방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업주들 자체가 일본 러브호텔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섹스의, 섹스를 위한, 섹스에 의한 러브호텔

이런 러브호텔은 대체로 승용차를 보유하고 경제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 심지어 ‘돈 많은 사람들’을 처단하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지존파의 제거 대상 중 하나가 러브호텔 이용자들이었다. 그런데 이게 90년대 말로 가면서 점점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유흥업소들이 대거 없어지고, 모텔 사업의 인기에 부응해 도심 안쪽까지 모텔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99년에는 호텔, 모텔, 여관, 여인숙을 구분하던 <공중위생법>이 <공중위생관리법>으로 대체되면서 이들 간의 구분이 없어졌고, 모텔이 호텔 명칭을 써도 아무 문제가 없어져 이용객들의 혼란을 빚기도 했다.

지금도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이른바 ‘모텔촌’도 당시부터 생겨난 것인데, ‘러브호텔 물러가라’는 피켓 시위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더 많은 언론에서도 이를 사회문제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관련 규정을 바꿔 모텔 설립 인허가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주차장의 프라이버시 보호시설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지만,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이유로 다시 규제를 완화하게 되었다.

깔끔한 모텔 객실 내부

음지에서 양지로, 모텔의 생존 발버둥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텨온 모텔들은 2004년 이후 새로운 사업 모델로의 전환을 구상해야만 했다. 월드컵 특수도 잠시,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으로 단속이 강화되면서 그간 모텔을 떠받치고 있던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인 여관발이나 룸살롱 2차, ‘원조교제(조건만남)’ 등의 행위가 어려워졌다.

2000년대 이전에도 불륜이나 원나잇을 제외한 더 심각한 문제들이 모텔을 중심으로 계속되어 왔는데, 대표적으로 ‘원조교제’와 미성년자 성폭행, 몰카 등의 범죄가 있다. 요즘 한국 영화 99퍼센트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가 일산의 모텔에서 ‘원조교제’를 한 사건뿐만 아니라, 인터넷 채팅의 유행과 개인용 모바일 기기 보급 확대로 불미스러운 성범죄도 우후죽순 일어나게 되었으며, ‘몰카’ 동영상이 유포되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 건축법에서 강제하는 안전 규정을 따르지 않아 화재 참사를 일으킨 경우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에서야 이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러브호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모텔들이 펼친 생존 전략은 공간 외양의 변화이다. 키치 양식의 건물을 버리고 심플하고 시크한 외관의 모텔들이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더 많아지기 시작했으며, 오로지 섹스만을 위한 모텔 이미지를 벗기 위한 객실 정비도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당시 유행했던 DVD 장비, 홈시어터, 게이밍 컴퓨터 등을 비롯해 최근에는 콘솔 게임기, 안마의자, 수영장, 글램핑 시설 등 다양한 오락거리 등이 구비되어 왔다.

숙박업소 플랫폼 <야놀자> 광고의 한 장면 <출처: 야놀자 유튜브 채널>

더욱이 최근으로 오면서 ‘야놀자’, ‘여기 어때’ 같은 플랫폼이 등장한 것도 모텔 이미지 변화 노력에 힘을 보탰다.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가 하면, ‘가족과 함께하는 모텔’,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모텔 파티룸’ 등의 콘셉트를 통해 대중적인 이미지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실제로 현재 20-30대 젊은 세대들은 단순히 섹스만을 위해 모텔을 찾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여가, 모임의 장소로 모텔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점점 더 성적인 것에 대해 쉬쉬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야외 활동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모텔은 음지로부터 양지로 서서히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하루아침에 바뀐 건 아니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의 효과도 잠시, 유흥업소의 속칭 ‘2차’가 향하는 곳은 여전히 모텔이 압도적이며, 스마트폰 보급 확대에 따른 조건만남의 주요 성사 장소도 모텔이 대부분이다. 마사지를 빙자한 여관발이 스타일의 출장 성매매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요 장소도 모텔이며, 최근에는 소위 ‘VIP’라고 불리는 고액의 성매매 서비스 등도 많은 경우 모텔에서 이루어진다.

더 떳떳한 모텔이 될 수는 없을까

더 밝고 떳떳한 MT를 위해서 

2021년 기준 서울시에 인허가받은 6,634개의  숙박업소 중 70퍼센트 이상이 모텔을 차지할 만큼 모텔은 이제 우리 일상 한 가운데 깊숙이 들어온 공간이다. 혹자는 모텔의 원조인 미국의 경우를 거론하며 한국의 ‘퇴폐적인’ 모텔 문화를 규탄하는데, 미국이라고 한국과 같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장거리 이동이 잦은 미국에서 잠시 주차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목적의 모텔이 많은 것은 맞지만, ‘노텔모텔(no-tell motel)’이라고 불리는 성매매를 위한 모텔 또한 존재한다.

섹스라는 것은 의식주만큼 인간 삶에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인데, 다른 것이라면 섹스는 지극히 사적이고 이러한 프라이버시의 보호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공간이라는 것이 지극히 사유화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사적인 장소를 찾기는 쉽지 않다. 호텔처럼 깨끗하고 아늑하고 떳떳한 시설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격과 효율을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이들에게 모텔이 더욱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어쩌면 모텔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부도덕함과 음란함의 이미지는 불법적이고 음지적인 행위들을 더욱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할지 모른다. 단순한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모텔의 자정 노력과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 더 떳떳하게 모텔을 이용하는 ‘정상인’들이 많아진다면, 이런 불법적 요소가 끼어들 틈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 출발과 진화 과정이 안타까운 역사적·사회적 상황으로부터 비롯된바, 단순히 모텔이라는 공간에 국한한 문제 해결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건강하고 밝은 사랑과 섹스를 위한 모텔이 자리 잡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2022년 10월

모릅니다,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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