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딱 망한 GP 시리즈는 어쩌다 휴대용 게임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까? - 임볼든(IMBOLDN)

명텐도라는 단어가 있었다. 12년 전인 2009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식경제부를 방문했을 때 뜬금없이 “요즘 일본 닌텐도 게임기 갖고 있는 초등학생이 많은데,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우리도 개발할 수 없느냐“라는 말을 한 탓에 생겼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전혀 모르고 뱉은 이 발언은 당시 많은 비웃음을 샀다. 심지어 그 후로 정작 게임규제는 더 심해져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명텐도의 강력한 후보로 꼽혔던 게임기도 실제로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게임파크 홀딩스에서 출시한 GP2X Wiz다. 마침 출시 시기도 절묘해서(2009년 4월 출시), 당시 언론사들은 ‘진짜 명텐도가 나온다!’ 같은 헤드라인을 달며 소식을 전했다. 물론 기기는 실패했고, 나중엔 영어단어 학습용 기기인 ‘깜빡이 학습기’로 팔렸다.

명텐도라는 호칭까지 얻었지만, 이 GP 시리즈의 역사는 사실 상당히 길다. 게임파크 홀딩스의 전신은 1996년 설립된 게임파크로, 원래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1998년부터 휴대용 무선 네트워크 게임기 개발을 시작한다. 정보통신부에서 지원하던 초고속 통신망 기반 차세대 게임도구 사업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참고로 당시 정부는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을 위해 전용 게임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첫 번째 휴대용 게임기 GP32는 2001년 11월에 출시됐다. 인터넷에 연결 가능한 게임기답게, 게임을 인터넷으로 사서 메모리 카드에 저장해 쓸 수도 있는 게임기였다. 문제는 비싼 가격과 게임. GP32용으로 발매된 타이틀 자체가 거의 없었다. 게임이 없는 게임기는 팔릴 리 없었고, 구매자도 게임기보단 SD 카드를 활용한 동영상이나 MP3 재생기 용도로 쓰는 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일본 문화 개방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막혔던 해외 게임기와 게임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당시 게임기 시장은 일본 회사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1995~2002년까지 한국에서 일본 게임기 수입은 불법이었다). 게임기 개발에 100억 원이 투입됐지만, 게임파크는 GP32를 2003년 7월까지 약 1만 대밖에 팔지 못했다. 그중 2천 대는 해외, 특히 유럽에 팔렸다.

왜 해외 반응이 더 좋았을까? 유럽 지역 개발자들은 이 게임기를 ‘게임 패드가 달린 포켓 PC’로 받아들였다. 사양도 다른 휴대용 게임기보다 더 좋은 데다, 게임 개발 도구가 모두 공개되어 있으며, 게임 개발 라이센스 비용을 받지 않았다. 물론 GP32는 원하지 않았을 테지만, 어쩌다 보니 최초의 오픈소스 휴대용 게임기가 됐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 무척 재미있는 장난감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GP32는 원하지 않았을 테지만, 어쩌다 보니 최초의 오픈소스 휴대용 게임기가 됐다.

따로 수출을 계획하지 않았던 GP32는 이러한 소문을 타고 1,400여 대가 유럽 지역에 팔렸다. 긍정적인 피드백 덕분에 GP32는 결국 일본 미쓰이 상사를 통해 유럽에 정식 수출하게 된다. 그렇게 공식 공급이 시작되자 많은 개발자가 몰려왔다. 곧 커뮤니티가 생기고, 동호회지가 발간되며, 각종 게임 에뮬레이터를 포팅하거나 여러 종류 게임을 개발했다. 휴대폰용 키보드를 연결해 쓰기도 했다. 그렇게 GP32는 국내외를 합쳐 약 32,000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픈소스 개발이 정작 회사에 돈 되는 일은 아니라서, 게임파크는 갈라지게 된다. 하지만 게임파크의 몇몇 전직 직원이 세운 게임파크 홀딩스는 정신적 후계를 자처하며, 후속작에 해당하는 GP2X(2005), GP2X wiz(명텐도, 2009), CAANOO(2010)를 계속 출시했다.

그중에서도 GP2X의 인기가 좋았다. 판매량은 약 6만 대에 불과했지만, 오픈소스 휴대용 게임기에 관심 있는 개발자 그룹을 만들어냈다. 2009년 중국에서 출시한 딩구 A320은 백만 대가량 팔리면서 저렴한 레트로 게임기 시장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지금 팔리고 있는 레트로 휴대용 게임기에 쓰이는 기본적인 기술이, 이때쯤 모두 모양새를 갖췄다.

그중에서도 GP2X의 인기가 좋았다. 판매량은 약 6만 대에 불과했지만, 오픈소스 휴대용 게임기에 관심 있는 개발자 그룹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한쪽에선 저작권에 신경 쓰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에뮬 게임기를 수도 없이 찍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한쪽에선, 게임파크 게임기 성능에 한계를 느낀 팬들이, 직접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0년에 나온 판도라(Pandora)와 2015년에 나온 드래곤박스 파이라(Dragonbox pyra)가 그런 게임기다. 2013년 출시된 GCW Zero는 게임파크가 사업을 접는다는 말을 들은 팬들이, 직접 제작한 후속 기종이다. 2012년엔 정식 라이센스를 얻은 네오지오 X라는, 에뮬에 기반한 공식 게임기도 출시되기도 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성패를 가늠하기는 매우 쉽다. 잘 팔리면 성공, 아니면 실패다. 그런 면에서 최초의 한국형 휴대용 게임기는 실패했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필터를 제거하면 이야기는 다소 복잡해진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개발된 게임기가, 개발자가 내세운 오픈소스 정책 때문에 해외에서 팬을 만들고, 오픈소스 휴대용 기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나중에 여기 쓰인 반도체 부품이 덤핑으로 시중에 풀리자, 이때 만든 OS와 프로그램, 하드웨어 설계를 그대로 베낀 값싼 게임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지난 몇 년간 싸면서도 꽤 잘 만든 레트로 게임기가 쏟아질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결국 GP 시리즈는 비즈니스 모델에선 실패했어도,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관점에선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떠난 셈이다.

결국 GP 시리즈는 비즈니스 모델에선 실패했어도,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관점에선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떠난 셈이다.

사실 따지기는 어렵다. 기술 세계는 온갖 운명과 우연이 얽혀서 돌아간다. 이를 개발한 게임파크도 GP32가 유럽 해커들 눈에 띄어 최초의 오픈소스 휴대 게임기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거다. 하드웨어는 제공했어도 그 안에 들어간 소프트웨어는 결국 오픈소스 개발 커뮤니티로 쌓아둔 자산에서 왔으며, 싼값에 만들어 보급(?)한 건 중국 회사가 아니면 어려웠을 거다. 그걸 보고 미니어처 게임기를 만든 건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센스일 테고.(참고로 패미컴 미니는 첫 6개월간 250만 대를 팔았다.)

결국 흐름은 돌고 돌아 레트로 게임 시장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어떻게 게임판이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겠다. 흔적이 남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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