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남을 브랜드, 조던 - 임볼든(IMBOLDN)

조던, 그 이름만으로도 위대한 이 브랜드에 어떠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조던의 등장으로 스포츠웨어와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키의 아이코닉 라인으로 자리매김한 조던은 오늘날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군에 걸쳐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출시 초기에 조던은 ‘점프맨’ 로고에 매료된 농구 꿈나무들을 위한 브랜드로 인식되곤 했다. 물론 NBA 스타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만으로도 구매 이유는 충분하지만, 조던이라는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이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마이클 조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옷이나 액세서리를 선택할 때 좀처럼 타협할 수 없는 것은 결국 ‘편안함’이다. 조던의 예술적인 실력은 다른 영역, 즉 의류 제품에서도 높은 완성도와 편안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조던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조던이 현재까지 선보인 방대한 컬렉션은 마치 ‘군단’과도 같은 팬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의 공식적인 협업은 1997년부터였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이미 둘 사이의 이야기는 시작되어 있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1984년의 그 역사적인 날, 바로 나이키가 처음으로 에어 조던 1 스니커즈를 선보였던 그 날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얻은 이 신발은 농구를 넘어 일상에서도 자리 잡게 되었다.

진정한 전설

오늘날 ‘전설’이라는 표현은 무분별하게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매분 매초마다 대상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인터넷이 없었던 과거에도 마이클 조던은 독보적 존재였다. ‘인터넷 유명인’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농구 그 자체였다.

조던은 시카고 불스에서 활약하며 6번의 NBA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고, 무수히 많은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마치 한 마리 가젤처럼 우아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를 막아서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한 모든 화려한 수식어를 빼더라도, 그가 던지는 모든 슛 하나하나를 볼 때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이곤 했다.

이처럼 조던의 압도적 기량은 ‘His Airness(우리말로 ‘전하’를 뜻하는 단어 ‘highness’에 ‘air’를 결합한 단어)‘, 그리고 그 유명한 ’에어 조던‘이라는 별명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 있었던 ‘에어 조던’이라는 별명은 조던이 나이키와 손을 잡고 첫 번째로 출시한 신발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그 이름 덕을 쏠쏠히 보았다. 조던이 처음으로 이 신발을 신었고, 대중에게는 1985년에 공개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유명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 피터 무어(Peter Moore), 브루스 킬고어(Bruce Kilgore)가 디자인한 나이키의 에어 조던은 그날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성공으로 날아오르다

첫 번째 모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나이키는 1986년 에어 조던 II를 선보였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이 신발에 조던의 열성 팬들은 독특한 매력을 느꼈다. 테스트 단계에서 조던은 오리지널 에어 조던의 어퍼에 새로운 버전의 쿠션을 결합한 신발을 착용했고, 이는 전장 에어솔이 들어간 최종 버전으로 거듭났다. 매끈한 라인과 인조 도마뱀 가죽을 중심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스타일과 높은 성능을 가진 신발이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버전이 출시되었다. 1989년에 선보인 에어 조던 IV는 전 세계 팬들의 열성에 힘입어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에 등장했다. 이후에도 타 브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신발이 매년 출시되었다. 

마이클 조던의 활동은 농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잠깐이지만 부친의 권유에 따라 미국 프로 야구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해 큰 이슈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에어 조던 IX는 야구 경기에 등판했을 때 그가 신었던 스파이크 운동화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채택했다고 한다 (이후 정식 출시된 버전에서는 스파이크를 뺀 농구화 형태로 출시되었다).

조던의 짧았던 야구선수 경력은 에어 조던 XI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버밍엄 바론스(Birmingham Barons)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할 당시 팅커 햇필드는 조던이 다시 농구를 하도록 설득하겠다는 생각을 에어 조던 XI의 디자인에 담았다고 한다. XI는 과거 신발을 재해석한 모델로, 에나멜 가죽을 사용해 정장 느낌을 줬던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출근 복장에 XI를 신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에어 조던에 대한 그의 애착은 NBA 규정을 어겨 벌금을 내는 것까지 불사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NBA 규정에 따르면 3가지 색 이상이 사용된 농구화를 신을 수 없었지만, 다른 선수들이 흰색 농구화나 검정 스니커즈를 신을 때 조던은 꿋꿋이 다채로운 컬러의 에어 조던을 착용했다. 나이키도 그런 그의 행보를 따라 원하는 신발을 제작해주었다.

에어 조던 컬렉션 뒤에는 뛰어난 영감이 있었다. 일례로 XIV 모델은 조던이 소유하던 페라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다음에 출시된 XV는 조던의 은퇴 후에 만들어졌는데, NASA 비행선 프로토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을 넣었다. 또한, 디자인의 중심에는 언제나 혁신이 있었다. 2018년도 출시된 XXXIII는 최초로 운동화 끈이 없는 모델이었다.

레트로의 매력

에어 조던은 출시될 때마다 매번 완판될 정도로 뛰어난 인기를 자랑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나이키는 ‘레트로’라는 새로운 라인을 선보였다. 에어 조던 II는 1994년 ‘조던 레트로 2’라는 이름하에 재등장했고, 2004년에 이어 2008, 2010, 2014년, 그리고 현재까지 재출시되고 있다.

레트로 버전은 오리지널 버전의 개선된 모델이다. 오리지널 특유의 디테일, 흠잡을 데 없는 디자인 그리고 캐릭터성을 여전히 갖고 있으면서도 최신 기술을 추가해 이전보다 향상된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었다. 쿠셔닝도 개선되었고 소재도 유연해진 반면 마감은 튼튼하게 처리해 올림픽을 꿈꾸는 농구선수든, 코트 밖 일상에서 신을 수 있는 멋진 신발을 찾는 사람이든 모두가 만족할 안정성을 갖추게 된 셈이다.

조던의 바이브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불리는 선수가 은둔자처럼 조용하게 지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던의 신발도 마찬가지이다. 에어 조던의 출시는 매번 수백만 명의 일반 대중, 스포츠 관계자, 미디어의 시선 집중을 받는 일종의 문화적인 이벤트가 되었다.

조던이 가진 특유의 바이브는 어느새 스스로가 가진 한계도 넘어버렸다. 신발에만 국한되었던 브랜드의 라인업은 막대한 인기에 힘입어 의류, 액세서리 분야까지 확장되었고, 기성복 라이프스타일 의류는 신발 제품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후드티, 농구 저지 유니폼, 조거팬츠, 반바지, 티셔츠, 재킷, 심지어 아동복까지 포함한 조던 브랜드의 의류 컬렉션은 남녀노소 모두가 입을 수 있도록 다양한 구성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신생아도 입을 수 있는 베이비 AF1 컬렉션과 ‘23’ 바다 수트도 있다.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과 계속해서 협업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탄탄대로

언뜻 보면 마이클 조던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조던도 많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선수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학교 대표팀에 선발되기 어려울 정도였던 그였지만, 결코 포기를 몰랐던 조던이었다. 오히려 몇 배로 노력하면서 언젠가는 팀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결국 빛을 보았고, 조던은 고등학교 대표팀에 선발되어 두 시즌을 소화해냈다.  매 시즌마다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는 모습에 스카우터들도 반하게 되었고, 결국 조던은 농구를 계속하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로 떠났다. 그 이후 조던은 대학 농구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성취했다.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타 힐스(Tar Heels)에서 세 시즌 동안 활약하던 중 1984년 졸업을 1년 앞두고 시카고 불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탄했다. 조던은 시작부터 수많은 상을 거머쥘 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임을 증명해냈다. 공기를 가르고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점프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독감을 앓으면서도 경기를 뛰었고, 결국에는 팀을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가 써 내려간 전설의 화룡점정도 이 무렵에 성취되었다. 바로 모든 이가 경탄을 마지않는, 우승 타이틀을 결정지었던 버저비터.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던은 지금까지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역사를 만들고 있다. 조던이라는 브랜드는 단지 이와 같은 그의 위대함, 긍정적인 태도, 강인함, 세심함을 제품에 담아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가 농구 경기에 쏟은 열정이 그대로 신발, 의류, 액세서리 컬렉션으로 옮겨진 셈이다.

코트 안과 밖 모두에서 기본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컬렉션이야말로 조던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조던이 앞으로 계속해서 남길 위대한 업적, 아마도 지금껏 그랬듯 탄탄대로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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