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는 효과를 노리고 이뤄진다.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시작했을 때 궁금했던 점도 여기에 있다. 왜, 지금, 이런 식으로? 사실 보복이 없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소녀상 설치 문제와 화해 치유 재단 해산 발표, 남북 평화 모드에서 일본을 배제한 이후 외교적 긴장이 쌓여오기도 했으니까.
저강도 보복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2018년 10월 강제노역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확정한 대법원판결 이후, 일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사용할 플루오린화수소산(불화수소산) 수출을 승인하지 않고 지연시켰다. 이런 일련의 일들도 위 물음에 답이 되진 않는다. 오죽하면 G20 정상회담이 끝나고, 미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다음에야 실행했다는 말이 나올까.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점에 대한 설명은 ‘원래부터 준비하고 있었고’, ‘G20 정상회담 때문에 실행을 늦췄으며’, ‘참의원 선거에 맞춰 터트렸다’는 것. 실제로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는 지난 3월 12일 비본 국회에서 한국에 대한 제재를 구체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중 반도체 산업을 건드린 이유는 ‘일본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한국 핵심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독과점적 공급구조로 인해 특별한 대체재가 없는’ 수출품이라는 판단에서다.
왜라는 질문에는 ‘아베 정권은 원래부터 한국 정부를 고깝게 보고 있었고’, ‘핵심 지지자들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해석해볼 만하다. 덧붙이면 일본 우익은 이번 조치로 인해 생기는 우리나라 국민의 불만이 한국 정부에 타격을 입히리라 기대한다.
그중 반도체 산업을 건드린 이유는 ‘일본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한국 핵심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독과점적 공급구조로 인해 특별한 대체재가 없는(한국이 반격하기 어려운)’ 수출품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1월 11일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외교조사회 합동회의에서, 아카이케 마사아키 참의원이 경제제재 방안으로 검토를 요구한 것이 ‘불화수소 수출 금지’다. 지난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를 자원무기로 써먹은 것을 그대로 베낀 조치다.
이런 일본의 결정은 제재 품목으로 꺼내든 포토레지스트나 플루오린화수소산 등도 빠르게 대체하기 어렵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반도체 생산 기업이란 사실에서 비롯된다. 2018년 기준 두 회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73.4%다.
메모리 반도체는 막대한 투자 비용과 제작 과정의 노하우가 필요하므로, 만들고 싶어도 아무나 못 만든다. 다시 말해 두 회사가 생산 못 하면 전 세계 IT산업이 멈춘다. 당연히 세계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조차 완전히 한국에 대한 금수 조치를 내릴 수도 없다. WTO 규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때마침 한국반도체산업은, 미·중 무역 분쟁과 반도체 시장 부진, 신기술 개발로 인해 신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회사와 맞먹는 기술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회사도 나타났다. 보복 조치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부품과 소재에 대해서도 검토가 들어갔다. 일단 다른 나라 회사를 찾아보고 있지만,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 덕분에, 공급망 재편의 방향이 소재 국산화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 2018년 기준, 일본으로 향했던 부품·소재 수입액 150억 달러가 한국에서 풀릴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냉정하게 따져보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노하우가 필요한 이유는 어떤 소재를 쓰는가에 따라 제조 과정에 미세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소재를 바꾸면 제조 과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과 양산하는 일은 또 다르다. 또한 품질이 안되는 소재를 한국 기업이라고 쓸 리 없다.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외치며 쫓아오고 있는 중국도 위험하다. 실력이 모자라도 시장을 막아버리면, 한국 기업도 손실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기업과 완전히 등을 지고 살 수도 없다. 아베가 밉다고 기업 교류를 완전히 끊는 것은 또 다른 약점이 될 뿐이다. 그동안 기초 기술 연구 및 소재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였던 것도 뼈아프다.
아베가 밉다고 기업 교류를 완전히 끊는 것은 또 다른 약점이 될 뿐이다.
연말이면 큰 윤곽은 드러난다. 아울러 일본은 끈질기게 우리 산업을 괴롭힐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를 달래줄 달콤한 이야기에 취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번 수출 규제부터 삼성전자의 시스템 메모리 사업을 핀포인트로 때렸다. 아베가 메기였는지 사냥꾼이었는지는, 지금 우리의 행동이 결정한다.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말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