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수려한 외모로 많은 이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인물로 유명하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나머지 그만 물에 빠져 죽은 그의 이름을 유래로 나르시스트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다[4].

오늘날 우리는 헬스장 거울 앞에서 셀카 의식을 치르는 나르시스트 운동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낫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애에 도취되지 않는 과유불급의 선을 지키는 것이고, 이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애에 도취되지 않는 과유불급의 선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감 넘쳐 보이는 헬스장의 몸짱 나르시스트들도 가끔씩, 혹은 매일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는 비현실적인 완벽한 몸을 기준점으로 둘수록, 그것이 비교 대상이 되어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하는 ‘신체상 불만족’ 때문이다. 정확히는 바디 이미지 이슈(Body Image Issue)라고 하는데[1],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정도로 굉장히 보편적인 문제다.

이미 서구권에서는 이와 관련한 전문적인 정보 및 자료가 많다. 반면 국내에서는 신체상(Body Image)에 대한 개념은 있지만, ‘신체상 불만족'(Body Image Issue)을 일컫는 정확한 명칭조차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그만큼 이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마저 드문 현실이다.

완벽한 몸의 기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남성은 식스팩 정도로도 몸짱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멋진 몸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면서 식스팩은 기본이 되었고,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 그리고 넓은 등까지 있어야 ‘운동 좀 했구나, 남자답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5]. 게다가 멋진 상체를 뒷받침해주는 탄탄한 하체도 있어야 하고, 팔 운동도 틈틈이 해주어야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타고난 신체 구조나 비율 때문에 운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서글퍼진다. 이렇듯, ‘신체상 불만족’은 누구나 한번 쯤은 가져봤거나, 하나씩은 있을 수 있는 콤플렉스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은 누군가 정해주는 걸까, 아니면 본인이 정하는 걸까. 씁쓸하게도, 이는 미디어와 SNS에 무의식중으로 학습된 멋진 몸이라는 입력값이 개인의 가치관을 거쳐 출력되는 기준에 가깝다. 화면 너머로 수많은 몸짱이 넘쳐나지만, 이 또한 개인의 기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크고 우락부락한 몸을 선호한다면 비교 대상은 보디빌더나 파워리프터가 되고, 잔근육으로 슬림한 몸을 선호하면 소위 몸짱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장점은 빙산의 일각, 그 아래의 거대한 단점들

자신이 추구하는 신체상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것은 분명한 목표 의식을 세울 수 있기에 분명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보이는 몸의 변화는 눈으로 확인하기 쉽고, 그만큼 더 많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마인드와 정신도 함께 건강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몸의 변화에도 긍정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 부분이 바로 ‘신체상 불만족’에서 오는 문제점이다. 이 불만족이 심화되면 BDD 증후군(Body Dysmorphic Disorder: BDD)이라는 잘못된 집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신체뿐만 아니라 얼굴을 포함한 모든 외모적 요소에 해당한다[1,2].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마인드와 정신도 함께 건강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몸의 변화에도 긍정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신체적으로 뛰어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 부위가 자꾸 신경 쓰이거나, 어깨가 부족해서 어깨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이제는 상대적으로 팔이 빈약해 보이는 현상이다. 부위별 운동을 골고루 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 같다가도, 단점 부위의 운동은 늘 숙제같이 느껴진다. 성형에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에 맞는 균형을 이루기 위해 또 수술을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계속 부족해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신체상의 부정적인 만족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삶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생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1,2].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도 만나고 식사도 해야 하는데 식단 관리는 해야 하니, 그 사이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요행 열차를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더 극단적인 경우 불법 약물에 손을 대 건강을 망치기도 한다[3]. 자신의 몸과 타인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고[5], 그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더 거대한 몸을 만들고 비현실적인 신체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BDD 증후군의 기본적인 증상

-콤플렉스에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 집착한다.
-자신의 콤플렉스나 살 찐 몸이 타인에게 평가받을까 사회생활을 피하고 싶어진다.
-콤플렉스를 가리거나 없애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심미적인 목표로 수술이나 시술을 도모 및 실행에 옮긴다.
-불안감, 우울감, 자신감 결여, 자기혐오와 같은 내적 결핍이 발생한다.

딜레마에서 탈출하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5]. 사회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간교류가 발생하고, 그 안에서 외모로 인해 얻는 장단점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제아무리 내면에 더 가치를 두고 외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10kg 이상 훌쩍 쪄버린 자신의 모습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야 한다’는 클리셰가 만들어내는 딜레마는 -다이어트와 좋은 몸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아무리 몸매가 망가져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는가, 도피와 합리화인가 아니면 변화해야 하는가- 끝없이 연결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결국 운동의 목적이 오로지 다이어트와 멋진 몸에만 포커스가 맞추어졌을 때 발생하게 된다.

자신의 몸이 타인에 의해 평가되는 것보다,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에 포커스를 둬야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적정선의 몸을 유지하며 건강한 마인드로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공통점은 ‘완벽한 몸’을 추구하지 않는다. 운동의 목표나 우선순위가 ‘눈으로 보이는 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선 무의식적으로 SNS를 살피지 않으며, SNS에 노출되는 환경과 빈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자신의 몸이 타인에 의해 평가되는 것보다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에 포커스를 둬야 한다.

보기 좋은 몸을 목표로 운동하면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한 몸과 정신을 목표로 운동하면 삶의 질을 높이는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물론 우선순위의 차이일 뿐이지만, 선택과 결과는 각자의 몫이다.

References
1. “Body Image Issues”, The Albert Ellis Institute, March 27, 2012.
2. “Dealing with Body Image Issues”, Tara Well Ph.D., Psychology Today, April 16, 2018.
3. “Death in Bodybuilding-The Price of Steroids”, Raiden Motivation, Youtube,  2018.
4. “Narcicuss Greek Mythology”, Adam Augustyn, Britannica.
5. “The Relationship Between Body Image Dissatisfaction and Psychological Health: An Exploration of Body Image of Young Adult Men”, Derek Paul Bergeron, Ohio State University,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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