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 디자이너가 슈트를 말한다: 맞춤 정장 팁 1 - 임볼든(IMBOLDN)

슈트를 제작하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좋은 재료를 사용한 음식은 간단한 레시피로 요리해도 맛이 좋고, 여기에 오랜 시간 숙성시킨 양념을 곁들이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한 그릇이 나온다. 세월의 흐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슈트는 대단한 디테일이 가미되지 않더라도 계속 손이 가기 마련이고, 수십 년간 옷감을 만져온 장인의 손길이 더해지면 옷에 품격이 배어난다.

지난 글에서 올해의 ‘슈트 트렌드’를 살펴봤다면 이번엔 실전이다. 슈트 제작 과정을 쭉 짚어보려 하니 이 글을 읽는다면 처음 방문한 테일러숍에서 여러 선택지를 보며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 거다. 당신의 기호에 맞는, 조금 더 능숙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길.

원단 고르기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원단을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취향의 차이일 뿐이지. 무게감이 있는 영국 원단이나 나라의 국민성을 닮은 견고한 독일제도 훌륭하다. 또한 원단의 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부드러운 터치감에 더욱 훌륭한 소재라 생각할 수 있지만, 테일러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100수면 충분하다. 두꺼운 원단으로 지은 옷이 그 태가 훨씬 멋스럽다. 슈트를 맞출 때는 얇은 원단보다는 두꺼운 소재를 선택하자.

지인이 겪은 아찔한 일화를 잠깐 덧붙이자면, 그는 이건희 회장이 입는 브랜드 ‘키톤’에서 들어온 150수 원단으로 남성 슈트를 몇 번 만들었단다. 하지만 수가 너무 높고, 울과 실크 함량이 적절하지 않았는지 다림질 온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박음질 부분에 주름이 생겼다. 도저히 이 주름이 펴지지 않아 손님들에게 전부 배상을 해줬다는 씁쓸한 결말이다. 수가 높은 원단은 이토록 섬세하다.

슈트의 소재는 다양하다. 울, 캐시미어, 면, 리넨, 폴리에스터, 실크, 벨벳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단은 울이다. 이처럼 슈트와 울은 실과 바늘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울 소재의 특징은 추울 때는 보온성을 높이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해 사계절 내내 슈트 만들기에 가장 접합한 소재다.

첫 번째 단계인 원단을 결정하면 다음은 디자인을 정할 차례. 사실 패션 디자이너들도 작업 순서가 모두 같지는 않다. 디자인 결정 후 이에 어울리는 원단을 정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원단 느낌을 보고 소재에 적합한 디자인을 뽑아내기도 한다. 슈트도 마찬가지이다. 손님이 무엇을 먼저 결정하는지에 따라 그 순서가 달라진다.

디자인은 보통 재킷 디자인을 말한다. 크게 싱글브레스트(single-breasted)와 더블브레스트(double-breasted)로 나뉜다. 슈트를 만드는 필자의 경험 상 싱글과 더블의 주문량은 8:2 정도다. 많은 이들이 압도적인 숫자로 싱글 브레스트를 선호한다.

위에서 언급한 슈트와 가장 가까운 소재 울은 트윌(twill), 샤크스킨(sharkskin), 헤링본(herringbone), 스트라이프(stripes), 체크(check), 버즈아이(birdseye) 등의 패턴이 있다. 이 패턴이 가진 무드에 따라 좋은 합을 이루는 브레스트가 있으니 기억하자.

트윌, 샤크스킨, 헤링본, 버즈아이 패턴들은 싱글 디자인과, 체크 원단은 더블과 어울린다. 스트라이프는 둘 다 무난하게 소화한다. 이런 점에 유의하여 테일러와 함께 슈트 디자인 시 단추나 안감 등 디테일에 본인의 감성을 녹여내자.

여기서 하나, 본인의 패션 감각을 남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다. 슈트는 심플하고 정갈한 옷이다. 남자들은 이 말끔한 옷을 입고 겉으로는 신사처럼 행동하지만, 늑대 같은 속마음을 품고 있다. 그 이중적인 면을 바로 재킷 안쪽에 표현한다. 여자라면, 남자의 슈트 안감을 유심히 보자. 남자의 숨겨진 야수성이 그곳에 있다.

몸 치수 재기

원단과 디자인을 결정한 다음에는 체촌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테일러 일을 하며 신체 사이즈를 재는 이 순서가 되었을 때 긴장하지 않은 손님을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렇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올바른 슈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바지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사이즈는 허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사이즈 등이니 정확한 체촌을 위해 바지를 벗고 재기도한다.

이 치수는 수트를 만들 때 중요한 베이직 요소다. 고로 정확성이 생명. 장담하건데 이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패션디자이너나 테일러들이 사실 많지 않다. 특히 크기별 샘플을 만들어 놓고 그 체킹복으로 손님들의 슈트 사이즈를 얻어내는 테일러숍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치수를 재고 나면 이제 재단으로 넘어간다. 이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지면에서 다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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