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취미는 취향의 영역이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이 도드라지는 그 세계에서도 대다수의 사람이 선호하는 카테고리는 분명 존재한다. 시계 생활에서는 빈티지 워치가 그렇다.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들이 공고해지고 또 허물어지고를 반복하는 시계 생활 중에도 많은 이들은 결국 빈티지 시계로 눈을 돌린다. 고도의 기술력이 녹아 있는 작고 얇은 케이스, 절제미와 안정적인 비율이 주는 매력을 지나치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 빈티지한 무드를 너무나도 영민하게 활용하는 브랜드가 있다. 프랑스 기반 마이크로 브랜드 발틱(Baltic)이다. 역사가 되어버린 상징적인 시계를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저렴하게 접할 기회 그리고 빈티지한 무드가 만나면 이는 발틱이라는 브랜드에 완벽하게 수렴한다.
나의 아버지로부터
시덕 DNA
발틱 근간을 이루는 빈티지한 무드는 브랜드 창립 배경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창업자 에티엔 말렉(Etienne Malec)의 아버지는 사진작가이자 시계 수집가였으며 진짜 시계 마니아였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만난 모든 시계의 흔적을 기록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이 있을 리 만무했던 그 시절, 벼룩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물론 구매 날짜, 금액, 사진 등 시계 컬렉팅에 대한 모든 정보를 노트에 남겼다.
아버지의 시계 꾸러미도 그의 감성을 자극한 요소다. 가방에는 무려 100개 정도 되는 타임피스가 뒤섞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군용 크로노그래프였다. 브라이틀링 네비타이머 806 두 개, 호이어 모나코 칼리버 11, 제니스 엘프리메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2998 등 아버지의 취향을 보여주는 시계로 가득했다.
애석하게도 부자간에 이런 취향을 공유할 새 없이 아버지는 에티엔 말렉이 5살이 되었을 때 돌아가셨고, 이 노트와 컬렉션을 발견한 건 에티엔 말렉이 16살이 된 무렵이었다. 남겨진 이토록 귀한 유산은 2016년 발틱이라는 브랜드 탄생의 영감 그 자체가 된다.
그는 아버지 컬렉션을 이루는 시계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며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40년대 빈티지 시계가 주는 단순함에서 나오는 완벽함. 이 디자인 기조를 추구한 결과는 발틱이 내놓은 첫 번째 시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내가 갖고 싶은 시계 만들래
디자인 맛집
발틱이 마이크로 브랜드 대표주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디자인이다. 이 대목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스, 롤렉스 익스플로러, 유니버셜제네바 트라이컴팩스, 롤렉스 폴뉴먼 데이토나 등 상징적인 시계들이 보이면서도 발틱만의 세련된 무드를 녹여내는 재주. 또한 시계를 구성하는 작고 큰 여러 요소가 비율, 균형, 간격 등 어긋남 없이 어우러져 있다.
발틱은 어떻게 사람들이 마이크로 브랜드에게 원하는 상을 적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말이다. 수많은 오마주 시계 사이에서 같지만, 또 다르게 많은 시덕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발틱 구성원 자체가 헤비 컬렉터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과 이미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1940~60년대의 빈티지 미학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한 상태였다.
“모든 사람과 소통하려고 하면 결국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제가 착용하고 싶은 시계만 디자인합니다.” 발틱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야쉬는 온라인 시계 플랫폼 리스트체크(Wristcheck)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브레게 숫자를 과장되게 사용하고, 클래식한 섹터 다이얼, 과거 스포츠 워치들을 떠올리게 하는 접시 베젤, 인덱스와 핸즈 디자인의 조화, 컬러 등 발틱은 몸에 밴 감각을 통해 단순히 오마주에서만 그치지 않고 새롭운 차원으로 마이크로 브랜드 시계를 정의했다.
버릴 수 없는 발틱 감성
무브먼트와 마감은 아쉽지만
2017년 드디어 그들의 첫 시계가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올랐다. HMS 001과 바이컴팩스 001라는 두 모델이다. 이들 모두 38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높은 돔형 헤살라이트 유리를 사용했다. 디자인은 비교적 심플했지만, 발틱이라는 브랜드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계단형 케이스가 깊이감을 더하고, 측면의 선형 브러싱, 러그는 원형 브러싱으로 섬세함을 입혔다. 이러한 작은 터치가 모여 입체적인 디자인이 완성된 것. 반응은 뜨거웠다. 첫날에 무려 30만 유로가 45일 후 캠페인이 끝날 무렵에는 515,000유로, 그러니까 한화 약 7억 5천만 원 정도가 모였다.
2018년 6월 나온 판다 크로노 모델은 200개가 한 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 출시되자마자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웃돈까지 얹어야 살 수 있는 MR01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시계 마니아들이 갖는 마이크로 브랜드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해소해 주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브랜드에 대한 아쉬움에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중 무브먼트가 가장 큰 화두다. 발틱은 시중 마이크로 브랜드 대비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확인하고 자연스레 떠올리는 혹은 기대하는 무브먼트가 있기 마련.
발틱 SNS에서도 ‘Miyota…Isn’t Swiss movement better?’ 등의 댓글들이 종종 보인다. 러그 각도라던가 섬세한 마감이 아쉽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프리즈믹 모델의 퀄리티는 확실히 한 단계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가격과 품질 사이에서 오가는 여러 의견은 모두 의미가 있고 일정 부분 매우 공감이 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논쟁은 발틱이 날카롭게 들고 서 있는 무기를 더욱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비자들은 시계의 매우 중요한 덕목인 ’예쁨‘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는 것. 그 예쁨의 적정선을 누구보다 잘 아는 브랜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발틱의 노선은 어쩌면 정방향일지도 모르겠다.
기추 부르는 발틱 시계 추천 5
공홈 구매 시 FTA 협약에 따라 관세가 면제된다. 홈페이지(Service-Contact)를 통해 꼭 인보이스를 요청하자.
마이크로 브랜드에서 무려 이백만 원대 시계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얄상한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이 가격에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 타키미터 베젤부터, 크기, 두께, 색상 등 빈티지로 점철됐다. 무브먼트에서 한시름 놨다.
Specification
- 케이스 크기 : 39.5 x 13.5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수동 셀리타 SW510-M
- 방수 : 50m
다이얼에 공을 들였다. 섹터 다이얼 디자인은 론진 빈티지 드레스 워치 오마주. 다이얼은 구간별로 텍스처를 다르게 활용해 빛에 따라 오묘하게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 이 시계의 매력이다. 밸런스 좋은 섹터 오마주 시계도 흔치 않으니까 겟.
Specification
- 케이스 크기 : 38 x 13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자동 미요타 8315
- 방수 : 50m
브랜드 대표 라인업 아쿠아스카프의 듀얼 크라운 모델이다. 돔글라스, 논데이트, 39mm 크기 등 취향이 맞다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는 다이버 워치다. 로터 특유의 소음은 호불호가 갈리겠다. 검판이냐 청판이냐 그것이 문제.
Specification
- 케이스 크기 : 39 x 11.9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자동 미요타 9039
- 방수 : 200m
발틱 개성이 매우 잘 드러난 모델이다. 클래식하고 어찌 보면 좀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빈티지 마니아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검정과 골드의 조화는 또 어떻고.
Specification
- 케이스 크기 : 36 x 9.9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자동 항저우 CAL5000a 마이크로-로터
- 방수 : 30m
발틱의 필드 워치는 이런 모습. 용두를 매립시키는 과감함이 드러난다. 물론 이 대목에서 등을 돌린 이도 있겠다만. 두께가 얇아 착용감도 좋고, 인덱스 디자인부터 은은한 다이얼 컬러, 스트랩까지 합이 뛰어나다.
Specification
- 케이스 크기 : 37 x 10.8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자동 미요타 9039
- 방수 : 15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