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살았던 이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스티브 맥퀸일 것이다. 할리우드 최고 배우로, 아울러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의 인생 서막은 사실 험난했다. 난독증과 부분 청각장애를 앓았고, 의붓아버지는 그를 학대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와의 관계 역시 다를 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문제아들을 위해 만든 사립학교에 그를 보내면서 보호자의 역할을 포기했다.
학교에서 보낸 시간도 물론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캠퍼스 영웅 같은 존재가 되었고, 이런 경험은 그를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맥퀸은 집으로 돌아와 일하기 시작했는데, 사창가, 카니발을 떠돌았고, 석유 굴착 노동자로도 일했다. 그러나 맥퀸이 미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이는 짧은 경험으로 끝났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동부 해안에서 보헤미안 투어를 시작했다.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고, 마침내 그리니치 빌리지에까지 이르렀다. 바로 그 시점부터 운명은 다른 방향으로 그를 이끌었다. 배우였던 당시 여자친구는 지역 극장에서 일하기를 제안했고, 재능을 발견한 것. 결국에는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Actorss Studio)에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스크린 속 그의 스타일
1950년대 말, 맥퀸은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작품마다 놀라운 스타일 감각을 선보였다. 브로드웨이에서 그가 맡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인 ‘빗물 가득(A Hatful of Rain)’에서 그는 빳빳한 검정 슬랙스와 헝클어진 흰색 단추로 심플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섹시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던 이 모습은 패션 아이콘의 등장을 알린 셈이다.
물론 맥퀸에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스타일 감각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연기력. 랭크시나트라가 맥퀸을 ‘네버 소 퓨’ 에 캐스팅하면서 맥퀸은 할리우드 역사에서 자신의 명패를 제대로 박았다. 그 이후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매그니피센트’ 등 대성공을 거둔 영화에서 활약했다.
각 작품에서 그는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대탈출’에서 맥퀸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질주하며 남성미를 뽐냈는데, 미군으로 출연했던 그의 캐릭터 속 패션이 회자하기 시작했다. 공항 점퍼, 팔을 드러낸 짧은 소매 셔츠, 그리고 부츠가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이 스타일이 맥퀸을 영화계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했다. 물론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의 세련된 옷차림과 ‘블리트’에서의 섹시한 올블랙 패션 역시 그 누구도 그의 스타일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신시내티의 도박사’에서는 아주 독특한 벨벳 칼라 재킷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각인 시킨 건 ‘대탈출’에서 였다.
옷으로 완성한 그의 존재감
무엇이 그를 할리우드 스타일의 상징으로 만들었을까? 맥퀸은 평소에도 항상 즐겨 입던 카키 팬츠에 심플한 티셔츠나 잘 짜인 블레이저를 걸쳐 입었다. 캐주얼과 럭셔리 웨어를 잘 믹스해 입는 그의 센스가 돋보인 대목.
맥퀸의 편안한 베이직 스타일은 모두가 한 번쯤 따라 해볼 만 했다. 깔끔한 착장, 3피스 수트, 또한 블레이저 아래에 스웨터를 매치했고, 투박한 청바지에 클래식한 처커 부츠를 신곤 했다. 맥퀸이 걸치면 아주 평범한 터틀넥마저 완전히 다른 옷으로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패피가 되기 위한 준비물은 옷 맵시라는 듯이.
물론 맥퀸은 유명한 영화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그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그의 패션이었다. 수많은 남성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심플한 멋을 연출하기 위해 맥퀸의 스타일을 따라 했다.
과연 아무나 ‘대탈출’ 속 맥퀸처럼 가죽 재킷을 하늘하늘하게 휘날릴 수 있었을까? ‘블리트’에서처럼 스타일을 구기지 않고 멋있게 터틀넥을 벗어 던질 수 있었을까?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 나온 숄 칼라 스웨터에 페르솔 714 선글라스를 쓰고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사람은 오로지 스티브 맥퀸뿐이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넘보지 못할 영역은 아니다. 우리는 맥퀸이 선보였던 가장 기발한 패션 감각을 빌리면 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모든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베스트 착장에서 조금씩 힌트를 얻어보자는 것.
그 유명한 페르솔 714 선글라스는 맥퀸의 스타일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맥퀸은 이 제품을 탁월하게 스타일링했고, 다행히 이 제품은 지금도 구매할 수 있다. 폴더블 선글라스는 맥퀸 제품과 동일하게 디자인됐고 다리의 안쪽과 가죽 케이스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있기까지 하다.
아직도 크레페솔 처커 부츠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하나쯤 새로 장만해두는 건 어떨는지. 맥퀸은 영화에서뿐 아니라 평소에도 플레이보이 처커 부츠를 신고 다녔는데, 지금은 ‘Mason&Sons’에서 비슷한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테일러드 팬츠부터 낡은 청바지까지 그 어떤 스타일에도 자연스레 매치하기 좋다.
숄 칼라 카디건은 터프한 남자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맥퀸은 이조차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어버렸다. 맥퀸은 ‘신시내티의 도박사’에서 두껍고 편안한 브라운 카디건을, ‘블리트’에서 또 다른 버전을 입고 출연했으며, 영화 세트장 밖에서도 종종 가죽 단추와 패치 포켓이 달린 남색 셰이커 니트를 입고 나타났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가 입었던 숄 칼라 카디건과 비슷한 제품을 ‘L.L. Bean’ 브랜드 등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플함에 대해서 말하자면, 반소매 크루넥 티셔츠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또 그만큼 스타일링하기에 어려운 것도 사실. 반소매 크루넥 티셔츠에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는 것은 맥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대신 앞에 말한 숄 칼라 카디건 아래에 티셔츠와 청바지를 매치하면 완벽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기본을 중시하는 스파 브랜드 제품이라면 모두 맥퀸 스타일을 따라 해보기에 충분하다.
맥퀸의 스타일을 논하면서 그가 가장 자주 입고, 사랑했던 아이템을 빼놓을 수는 없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해링턴 재킷을 입고 등장했고, 그 이후로 그 재킷은 그를 대변한다. 영국에서 제작된 G9 바라쿠타 해링턴 재킷은 오리지널 프레이저 타탄 안감과 함께 맥퀸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스티브 맥퀸은 샤프한 신사 스타일부터 편안한 멋스러움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스타일링에 있어서 맥퀸만 한 달인은 없었으며, 그를 넘어설 사람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맥퀸의 스타일 전성기를 따라 해보는 것이 당신의 목표라면, 티가 나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스타일링 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언제나 진실했던 맥퀸이라는 스타일 아이콘을 기리는 제대로 된 방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