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좋은 지금이잖아, 추천 기차 여행 영화 5선 - 임볼든(IMBOLDN)

평온했던 일상을 야트막하게 뒤흔드는 것들을 만나고 싶을 땐 짐을 꾸리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오고, 머무르고, 떠나가는 하나의 정거장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을 땐 기차를 선택하게 되고. 쉬지 않고 흘러가는 초록의 풍경을 마주 보며 ‘당신과 내 사이는 늘 여름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시시한 고백의 말, 그리운 마음 하나 이고 긴 시간을 견디는 푸석푸석한 고단함, 언젠가 기차는 멈추고, 우리는 끝내 그곳에 다다른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공간, 기차에 잠시 마음을 얹자.

비록 아직은 시기상조라지만, 기차 여행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아마 당신은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될 거다. 여행에 대한 애틋한 마음 더욱 가까이 느끼시라고 작품 속 실제 등장하는 동선을 따라 열차 운행 구간, 요금, 소요 시간 등의 정보도 수록했으니 이 리스트는 다가올 그때를 위해 일단 킵.

꾸뻬씨의 행복여행 (2014)

‘행복’이라는 막연한 단어에 방점을 찍고 길을 나선 남자가 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런던 정신과 의사 헥터(사이먼 페그). 불행을 도처에 둔 사람들의 정신을 진단하고 치료해주던 그도 모두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행복의 실체가 드디어 궁금해졌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를 돌며 돈 쓰고 시간 쓴 그는 과연 원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을까. ‘엑또르 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그 답을 만나는 사람 속에서 더듬어 보며 15가지의 깨달은 바를 전한다.

그는 상해에서 티베트를 잇는 세계 최장 고원 열차에 탑승하는데 이는 하늘을 달리는 청장(칭짱)열차다. 무려 해발 고도 4,000m 높이를 지나니 고산병약 지참은 필수. 아울러 상해에서 출발해 라싸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47시간 30분에 달한다. 깨달음 얻기 전에 병 얻을 수도 있지만, 히말라야 고원의 풍광은 차고 넘치게 만끽할 수 있겠다. 티베트는 여행자라면 허가증, 현지 가이드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자.

·종류: 청장열차(靑藏列車)

·구간: 상해 – 라싸

·소요시간: 47시간 24분

·요금: 좌석 7만 5천 원 / 침대 16만 원


윤희에게 (2019)

편지, 카메라, 눈, 추모식, 오타루 그리고 첫사랑. <윤희에게>에 사용된 이 많은 소재들이 겨울이 되면 꼭 따뜻한 장판 위에서 틀게 되는 영화 <러브레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엔딩 타이틀이 뜨기 전 윤희(김희애)가 쥰(나카무라 유코)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리는 ‘나도 네 꿈을 꿔’라는 대사 한 줄은 이 영화를 전혀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게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죄의 무게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윤희가 쥰을 만났을 때의 눈빛을 마주할 때 또한 이 영화에 입혀진 퀴어 영화라는 틀을 벗겨 ‘이건 그냥 사랑 영화’라고 얘기하고 싶게 만든다.

10대에 찾아왔던 감정을 누르고, 어느덧 중년이 된 그들은 윤희의 딸 새봄(김소혜)의 활약으로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다시 조우한다. 오르골과 운하로 대표되는 이 작은 도시는 앞서 말했듯 <러브레터> 촬영지로 도서관, 학교, 후지이 이츠키 집 등 곳곳이 관광 명소다. 또한 매년 2월이면 ‘눈빛거리축제’가 열릴 만큼 내리는 혹은 쌓여있는 눈을 넋 놓고 응시할 수 있는 곳. 눈멍하고 싶다면 단단히 무장하고 겨울, 신치토세 공항에서 내리면 된다.

공항 도착 후 안내 표지판을 따라 JR 철도 탑승 구역으로 가면, 판매 부스 또는 기계를 통해 오타루행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삿포로를 경유하는 코스도 좋다. 참고로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구간은 영화 속 장면처럼 창밖을 통해 바다를 볼 수 있으므로 열차 오른쪽 좌석에 앉기를 추천.

·종류: JR 쾌속 에어포트

·구간: 신치토세 공항 – 오타루

·소요시간: 1시간 13분

·요금: 1,910엔 (지정석 +530엔)


비포 선라이즈 (1995)

여행에 ‘낭만’이라는 단어가 늘상 따라붙는 이유는 운명을 빙자한 어떤 만남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각자의 공간에 머무르다 한 점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이 되는 그 순간을 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아주 막연한 꿈을 꾼다. 그 달콤한 허상에 불을 지핀 영화가 바로 <비포 선라이즈>일 거고. 부다페스트에서 할머니를 뵙고 자신이 다니는 소르본 대학이 있는 파리로 가는 셀린(줄리 델피)과 여자친구의 이별 선언을 듣고 마드리드에서 빈으로 향하는 제시(에단 호크)가 목적지는 다르지만 기차라는 공간 속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만난 것처럼 말이다.

‘투머치토커’ 본능 유감없이 발휘하는 그들의 케미를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은 쉴 새 없이 튀는 애정 기류 말고도 말고도 오스트리아 빈을 함께 누빌 수 있다는 점이다. 비포 선라이즈 투어 상품까지 판매했을 정도니 이 도시에 대한 환상을 영화가, 아니 셀린과 제시가 얼마나 크게 키워줬는지 짐작할 법하다. 하지만 현재 <비포 선라이즈>에 등장했던 프랑스 파리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오갔던 유럽 횡단열차 모차르트 호는 2007년 운행을 중지했다.

못내 아쉽다면 오스트리아 국영 철도인 OBB를 이용해 그들이 내렸던 7번 플랫폼에 닿으면 된다. 빈에는 중앙역(Wiener Hauptbahnhof), 마이들링역(Bahnhof Wien Meidling) 등 몇 개의 역사가 있는데 그중 영화 속 등장하는 곳은 바로 서부역인 베스트반호프(Westbahnhof)이다. 갑작스러운 제시의 제안을 받아들고, 과감히 자신의 경로를 이탈해버린 셀린의 결단력을 쟁였다면, 그들이 초여름 거닐었던 빈 곳곳을 어서 구글맵에 표시해 두자.

·종류:  OBB 오스트리아 국영 철도

· 구간: 부다페스트 켈레티 (Budapest-Keleti) – 빈 베스트반호프(Wien Hbf)

·소요 시간: 약 2시간 40분

·요금: 약 20유로


다즐링 주식회사 (2007)

최근 소개했던 건축 영화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린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 ‘다즐링 주식회사’. 미장센으로 빈틈없는 조형미를 직조해내는 그의 감각이 고스란히 이 영화에도 묻어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지 않은 어머니를 찾아 나선, 서로에게 어색한 존재인 삼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로얄 테넌바움>에서 보여줬던 단정한 유머와 슬랩스틱이 공존하는 영화.

이들이 어떤 의미를 찾고 싶어 길을 떠났든 간에 첫째지만 자격 미달인 형, 아버지 유품이 담긴 루이비통 가방 11개를 기어코 끌고 다니는 둘째, 구 여친에게 집착하는 막내 등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이 머저리들을 주시하는 것만으로 러닝타임은 순삭이다. 결국 기차에서 쫓겨나 마냥 철부지로 남을 것 같았던 이들은 인도의 한 마을에서 어떤 사건을 맞이하고, 그들은 조금씩 자라는 다 큰 어른이들의 성장 영화이자 로드무비다.

놀라운 점은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촬영됐다는 것. 이를 위해 인도 타르 사막을 건너는 열차 10량을 빌렸다는 사실은 감독의 괴짜스러움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속 기차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인도의 풍광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열차가 있다. 바로 인도 세 개의 산악 철도 중 하나인 ‘다즐링 히말라야 철도(DHR)’다. 코로나19로 잠시 운행을 중단했지만, 재개를 알렸다는 소식이다.

·종류: 다즐링 히말라야 철도 DHR

·구간: 다즐링(Darjeeling) – 굼(Ghum) 순환 

·소요시간: 왕복 약 2시간 

·요금: 성수기 1,600디르함 / 비성수기 1,280디르함


이터널 선샤인 (2004)

많은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고, 반면 이들을 보며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무수히 많은 영화기도 하다. 에디터 본인은 후자를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전자의 편에 서게 되는 쪽. 이 영화를 보고 ‘사흘간 긴 잠에서 앓았다. 깨어나 보니 낯선 날에 닿았다. 달은 아직 거기 걸려있고, 그 달을 더듬어 기억처럼 무너진 너를 찾아간다.’라는 알 수 없는 메모를 남겨두는 정성까지 보였으니 말이다.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기억을 지워주는 사설 업체에 의뢰해 자신과 나눴던 기억, 아니 자신을 도려낸 것을 안 조엘(짐 캐리)도 그곳을 찾아가 그녀의 흔적을 지운다. 하지만 조엘의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도 ‘몬톡’ 해변에서 만나자는 그녀의 목소리는 남고, 이들은 관성처럼 또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염세 버튼 누르면, 모든 이별에는 이유가 있듯 어차피 다시 헤어짐의 장면을 마주 들게 될 거라는 씁쓸한 결말이 예상되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공간인 몬톡 해변을 거닐고 싶어질 거다. 언뜻 보이는 편지 봉투와 오가는 대화 속에서 알 수 있듯 조엘의 집은 뉴욕 록빌 센터. 결근 불사하고 몬톡 해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롱 아일랜드 레일로드 LIRR을 이용해야 하는데 요금은 출퇴근 시간을 고려한 듯, 뉴욕 터미널 도착 기준 오전 6시~10시와 출발 기준 오후 4시~8시 피크 타임과 그 외 오프 피크 타임으로 나뉜다.

·종류: 롱 아일랜드 레일로드 LIRR

·구간: 록빌 센터(Rockville Centre) – 바빌론(Babylon) – 몬톡(Montauk)

·소요시간: 2시간 46분

·요금: 16.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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